봉오동 청산리
봉우리에 울려 퍼진 총성 소리 간데없고 오 리도 못 간 곳에 물길이 막아서네 동녘에 해 뜰 때까지 애국가나 불러볼까
청산은 어드메뇨, 북망산 가듯 했네 산길을 돌고 돌아 승전탑(勝戰塔) 미처 못 가 리피트(repeat) 문전박대로 뒤집어쓴 흙먼지
돌아오는 길, 차 뒤로 흙먼지만 자욱했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남의 땅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국방부에서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두 영웅인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 외 이범석 이회영 지청천 다섯 분 애국지사의 흉상을 없애려고 한다. 밑밥을 이렇게 뿌리더니 이젠 홍범도 흉상만 콕 집어 없애겠다는 말이 돈다. 돌이켜 보면 1920년 6월에 벌어진 봉오동전투는 고려령 계곡에서 계곡 안쪽 독립군의 본거지인 100호 민가와 훈련장 접근을 사전에 막아낸 정규 독립군의 최초 승리였고, 그 여세를 몰아 같은 해 10월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부대와 대한독립군의 홍범도 부대가 연합하여 일본군에 대승을 거둔 청산리전투는 우리나라 무장독립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대첩인 걸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말이다. 이 또한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원 전력을 치졸한 변명으로 내세우지만, 내가 아는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원이 된 이유는 소련 지도부의 군자금 지원과 독립군과 고려인들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계책에 의한 것이었다. 설령 공산당원으로 소련 정부로부터 일종의 혜택을 좀 받았기로서니 이 정도로 60대 노인이 되어버린 그에게 어느 누가 돌팔매질을 하랴.
혹자는 홍범도 장군이 육군사관학교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는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명확하다.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군대가 해산된 이래 봉오동 청산리 전투는 처음으로 제공된 군복을 입고서 벌인 독립군 최초의 전투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군은 독립군과 광복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핵심에 홍범도 장군이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건국훈장을 추서하고, 노태우 정권 때는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유해를 모셔오려고 했으며, 박근혜 정권 때는 잠수함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했을 뿐만 아니라 2018년 육군사관학교장은 ‘육사의 학칙에 따라’ 홍범도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들어서면서 2년 만에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었다. 공산주의자면 무조건 빨갱이로 모는 이 정권의 발작 증세가 또 도진 탓인가. 제발 역사에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더위에 실성한 건지, 아예 나라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려고 하는 건지, 나 원 참... 오버해도 너무 오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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