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의 민낯⑥ 옥박골 - 옻밭이 사라진 뒤 하나의 암호에 그치다[한국의 지명 이야기]‘옥박골’이 ‘청계동’에 밀려 숨 못 쉰 지 오래였으나 길이름 체계로 주소가 바뀔 때 소생되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기실 ‘청계동’은 마을이름/고유명사라 하기도 무엇하다. 수도 서울의 ‘청계(천)’를 모두 알고 있으니 기껏 해봐야 아류이고, 가까이에는 과천시 청계마을(문원동)도 있지 않은가. 우리 마을 주소는 ‘경기도 의왕시 옥박골 서/동길 000(숫자)’이다. 주소를 불러주거나 겉봉을 보고 다들 동네 이름이 좋다고 감탄한다. 그러고 나서 무슨 뜻이냐고 묻는데 매번 난감했다. 시청에서 올린 설명은 이러하다. 한직골에서 청계사 가는 초입에 있는 마을로 조선 시대에 이곳에는 죄인을 가두는 옥(獄)이 있었으므로 '옥박골'이라 했다. 의왕시 청계동이 고을 중심지(군•현 치소[郡•縣 治所])도 아닌데 감옥이 존재했다니 어딘가 잘못되었다. 이후 옥이 철거되면서 그 주변 일대를 '옥터밭'이라 불렀다 한다. 실제 광주광역시 광산구 옥동마을에는 옛 복룡현(伏龍縣)의 ‘옥터밭’이 있다. 옥박골 옥터밭 설은 관련 논문(이명규 <의왕 지역의 지명 고찰(1)>, 한양어문 16, 1998)에도 맨 먼저 소개되고 있다. 논문에서 짚는 둘째 유래는, 제사 비용에 쓰는 위토(位土) → 웃토 → 옥토에서 옥박(골)이 나왔다고 한다. 첫째 유래에도 해당되겠는데, ‘(옥)터(밭)’가 소멸되는 과정이나 까닭이 선명하지 않다. 전국 땅이름을 살펴보면, 감옥이 있다 하여 ‘옥터’나 ‘옥터거리’는 흔하지만 ‘옥박’으로 발전한 예는 보지 못했다. 이 주장은 옻밭골의 ‘옻’이 ‘옥’으로 변한 뒤에나 나올 수 있는 변명이다. 논문에서 유추한 세 번째 지명유래는, 길목이 속으로 들어간(예, 옥니) 밭이라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어느 하나 성에 차지 않는다. 짐작되는 바 있어 예전에 우리 마을에 옻나무밭이 있었냐고 물어보았더니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답변이다. 마을에 감옥이 있었다는 말은 더욱 허망하다. 지명유래가 순리대로 읽히지 않을 때는 동일한 이름이 다른 지역에도 있는지 조사해봐야 하는데 의외로 옥박골은 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옥밭•옷밭•옥박 계열 땅이름은 ‘옻(나무) 밭’에서 비롯되었다.
24412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신동면 칠전동길 12-67 (증리)
충남 서산시 부석면 [명칭 유래] 옻나무밭이 많으므로 옻밭굴, 옻밭말[漆田村], 또는 칠전(漆田)이라 하였으나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옻 ‘칠(漆)’ 자를 일곱 ‘칠(七)’ 자로 쓰는 칠전리(七田里)가 되었다.(디지털서산문화대전) ‘七’로 바뀐 또 한 예로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七田里)도 꼽을 수 있다. '옻'과 무관하게 된 ‘漆’이 된 바에야 알기 쉽고 획수가 적은 글자로 바뀔 운명이라고나 할까.
【칠전-동】 강원도-횡성군-둔내면-삽교리- → 옻밭골 (땅이름전자사전) 【칠전-동】 전라남도-함평군-손불면-산남리- → 옻밭골 (땅이름전자사전)
조사장소 : 전남 담양군 무정면 동산리 칠전마을 / 제보자 : 정종순 [구연상황] 이어 조사자가 왜 칠전인지를 묻자 제보자가 다음 이야기를 구연했다. [줄거리] “그 전에 예전에 옻나무밭이 많이 있다고 그러거든요. 옻 칠[[漆]] 자, 밭 전[[田]] 자. 그래서 옻나무밭이라 했는데. 지금 살~짝 우리가 봐도 옻나무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요. 근디 그 유래를 모르것어요. 내가 지금 우리 마을 터 잡으신 분들헌테{분들로부터} 12대 종손입니다. 밀양박가 12대 종손이예요.”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kdp.aks.ac.kr/gubi)
딱히 옻나무도 없는데 ‘옻밭골’이라 부름이 의아하게 다가옴은 인지상정이다. 맞춤법이 통일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옷(밭)’으로 쓴 지역도 있다.
[조선지지자료] (1911년)
【옷박-골】 [칠전곡, 의암곡] 강원도-삼척군-노곡면-상마읍리 : 산중턱 서북쪽에 있는 마을 (한국지명총람, 1960년대)
한자로 봐서도 ‘옻밭’이 맞는데 이미 마을에서도 당초의 유래를 잊어버린 듯 ‘옷바우/衣巖’도 나란히 올라 있다. 이밖에도 ‘옷박골’로 쓰는 곳은 대구광역시 달성군-하빈면-봉촌동, 강원(옛 함경)도-원산시-영삼리가 있다. 또 다른 표기로서 아래의 예를 들 수 있다.
충남-당진군-읍 – 사기소리- 【옥박-골】 점말 남쪽 이배산(충남 당진) 아래에 있는 마을 옥천군 안남면 지수리 【옷밥골】 [옥박곡, 옥박골, 수동] 구비 동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 이곳에 부자가 살았는데 의식 걱정이 없었다 함. (땅이름전자사전)
‘옻밭’이 '옥박(골)'으로 변함을 국어학으로 풀이하면 이러하다. 뒤의 골 때문에 ‘박’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두고 ‘위치동화’ 현상이라 한다. ‘손가락’이 ‘송까락’으로 발음되는 것과 같다. ‘옷밥골’은 ‘밭’이 ‘밥’이 되니 부자가 살아서 입고(옷) 먹는 걱정 없는 마을로 스토리텔링 되었다. 아래에서 보듯이 ‘옻’은 옥(玉)이 되고, ‘밭’이 ‘박’이 되니 ‘보석(본관?) 박씨가 사는 고을’이 되기도 한다. 경북-선산군-장천면-석우동-玉朴谷 / 【옥박-골】 돌모리 남쪽에 있는 들
이렇게 많은 옻밭골에 과연 옻이 있기나 했을까? 기록/사료가 별로 없고, 연구도 안 되어 있는 분야라서 말하기 어려우나 관련 법령과 해당 지명이 남아 있는데 굳이 의심할 까닭이 없다. 존속 여부나 옻밭 규모는 그 다음 문제다. 『경국대전』 공전(工典), 나무심기(栽植) 조항은 이렇다. “여러 고을에서는 옻나무(漆木)·뽕나무(桑木)·과일나무(果木)의 그루 수(條數) 및 닥나무밭(楮田)·왕골밭(莞田)·살대나무(箭竹)가 생산되는 곳의 장부를 작성하며 3년마다 장부를 고친다. 공조(工曹)와 각 도·읍(道·邑)에서는 이를 보존하여 나무를 심어 가꾼다.” 조정이나 관청에 위의 나무나 풀은 항시 수요가 있을 터이므로 거기에 특화된 밭 이름을 보게 된다.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직천리 ‘닥(나무)밭(楮田)’, 경북 선산군 선산면 (왕)골밭(莞田洞) 따위가 그 사례다. 경기도 여주군 하품리에는 뽕막(골)이 있다. 옻밭의 경우도 대부분 이름만 남아 있으나, 아직 옻밭이 있고 그 땅이름을 빌어 일찍부터 군현(郡縣) 지명으로 삼은 지역이 있다.
[옻밭]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송산리에 있는 자연 마을. 마을 주변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밭漆田이라 부르게 되었다. (디지털칠곡[漆谷]문화대전)
문제는 법령이 이상대로 시행되었으며, 그렇다 하더라도 얼마나 존속되었는지에 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하물며 몇백 년 뒤 나라가 망해가는 판에 당초의 행정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조 23년(1645) 10월 30일에 우의정 이경석이 올린 진언을 들어보자. "성상의 하교가 참으로 옳습니다. 각 고을의 저전(楮田)·칠전(漆田)·감초전(甘草田)은 모두 헛이름만 있는데도 백성들에게 대가(代價)를 내게 하는 것이 모두 폐해가 되고 있습니다.“ (인조실록 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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