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명 이야기 ⑬ 지명 ‘평양’은 토박이말 ‘부루나’를 한자로 옮긴 것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기사입력 2025/07/14 [08:30]

한국의 지명 이야기 ⑬ 지명 ‘평양’은 토박이말 ‘부루나’를 한자로 옮긴 것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입력 : 2025/07/14 [08:30]

  우리 겨레가 세운 나라는 한(韓)으로 불리던 남쪽의 삼한•삼국과 북으로는 만주 벌판에서 부여(夫餘)가 생긴 뒤 그 후속 왕조라 일컫는 고구려•백제(남부여)가 있다. 기원전 1세기 무렵 만주 송화강 유역에 ‘동명’이 세운 나라가 부여다. 국호 부여는 평야를 의미하는 벌(伐·弗·火·夫里)에서 연유했다고 하니 부루(夫婁)와는 한자만 다르지 같은 나라 이름이다. 이 ‘벌’이 북방에서는 뒤에 ‘부여’로 바뀌었다.(최남선, 아시조선兒時朝鮮) 부여의 원 거주지라고 나오는 ‘녹산(鹿山)’이 퉁구스어에서 사슴을 뜻하는 낱말 ‘buyu’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주장이(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있다. 인류학적으로 친연성 있는 종족의 언어이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나라를 세우는 마당에 누가 자신의 영토를 ‘사슴 땅’이라 하겠는가. 어느 나라든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든가 자기들만이 드넓고 안정된 땅에 자리 잡았다고 할 터이다.

 

  한편 부여 왕족이라고 일컫는 (고)주몽은 혼강 유역의 졸본에서 건국하였다. 유리왕 22년(서기 3) 통구의 국내성으로 천도한 뒤, 동천왕은 그 21년(247)에 길림성 집안(集安) 분지의 환도산성에서 평양성(平壤城)으로 종묘•사직을 옮겼다. 이 평양은 환도산성 아래의 평탄 지역을 말한다. 그 뒤 장수왕 15년(427)에는 고구려 서울을 다시 평양으로 옮기는데, 이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북한 땅 평양시 일대다.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지금의 서울도 ‘평양’이었는데 북쪽의 같은 지명과 구별하여 『고려사』에는 “남쪽평양(南平壤)’이라고도 부른다”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평양은 한자 ‘平+壤’이 합쳐진 이름이다. 이 땅을 ‘평나(平那)’라고도 부르니(『삼국유사, 2부(府)』) ‘壤’은 땅을 뜻하는 한자이고 ‘나’라고 읽는다. ‘壤’은 때로 한자 ‘川’으로도 썼으니 곧 ‘내’로서, 고을 형성에 요긴한 큰 물길[川•江]을 말한다. ‘나’는 ‘노(奴)’라고도 쓰는데 그 규모는 고을이나 그 이상 되는 큰 규모- 大邑 -로서 처음 고구려를 구성했던 적은 나라들에서 보듯이 ‘ㅇ나’ 또는‘ㅇㅇ노’라고 불렀다.

 

  본디 우리 땅 이름에 ‘부루나’가 있다. ‘부루+나’는 잊혀진 땅 이름으로 알고 있지만 시방도 쓰는 말이므로 정확히 말하면 ‘화석화된 지명’은 아니다. 가신[故] 이봉애 보유자의 고증에 따라 평양 무용 ‘부루나살풀이’는 복원되어 춤으로 재현되고 있다. 색다른 춤이기에 감상평도 제각각이다. “춤은 서도소리에 애환을 담은 섬세한 동작과 여성적인 춤이다. 문헌 기록에 따라 평양 권번의 복식으로 속치마를 검은색 치마보다 길게 입는 것이 특징이다.” “이 춤. 볼수록 매력 있어요. 부루나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네요” “살풀이가 저렇게 당당합니다. 힘찹니다. 하하, 우리나라의 북쪽 춤이나 악(樂)은 여자나 남자나 슬픔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따위다.

 

▲ 부루나 살풀이 김춘희 (사진=신종원)  © 군포시민신문


  ‘부루나 춤’에 대한 연구 또한 없지 않다. “각 도시마다 생긴 지방 권번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평양의 기성권번(箕城券番)에는 학감, 부학감과 몇 명의 교사가 기생교육을 담당했다. 평양 기생학교의 원 명칭은 '평양 기성권번이었다.  - 건너뜀 - ‘기성(기자 땅’은 현재의 평양을 말하는데, 권번이 1926년에 설립한 학교가 ‘평양기생학교’이다.”(신현규, <일제강점기 권번 기생의 일람표 연구 3). 해당 각주는 이러하다. “본래 고유말인 ‘부루나’를 한자로 옮긴 말이다. 고려 때는 서경 또는 서도라 하였으며, 버들이 우거진 곳이라는 ‘유경(柳境)’, 그 밖에 기성이라고도 불렀다.”

 

  다행히 국어사전 『푸른배달말집』(한실, 2024)에는 부루나의 전체모습이 실려 있다.

    [부루나] 우리나라 놉하늬(北西)녘에 있는 고장이자 큰 고을. 가고리(고구려) 옛 서울이어              서 옛 삶꽃 자취가 많이 남았다.  ⇐ 평양 

    [부루나찬국수] 메밀국수에 찬 장국을 부어 만든 부루나터박이 맛갓  ⇐ 평양냉면

    [원주(原州)]  ⇒ 부루나

  이렇게 보면 강원도 원주(시)도 본디는 ‘부루나’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부여’가 벌판의 뜻이니 부루=原(들, 벌판)이고 나=州로서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부루나의 으뜸땅(宗主地) 북녘 평양이 이 지명을 지속해서 써오고 있었으므로 어느 단계에서 원주를 가리키는 토박이 땅 이름은 사라져간 것으로 보인다. 원주 부루나는 어떻게 가뭇없이 소멸되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보면, 원주시 ‘부론면(富論面)’ 이름이 흥미롭다. 적어도 한자 그 자체로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그 하나의 해결책으로서 넓은 들에 논이 있어서 나온 이름으로 보여진다. ‘불(~벌)+논>불논>불론>부론’으로 음운이 변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김은철, 『원주지명총람』). 문제는 논>노가 아니라는 데 있다. 부론동의 토박이 땅 이름은 ‘부놋-골’이다. 『한국땅이름전자사전』의 폴이를 보자면 [부놋-골] 단강리 동북쪽에 있는 긴 골짜기. 예전에 사기를 구웠으며, 이 이름을 따서 부론면이 되었다.

 

  부놋-골은 ‘부노+골’이 합쳐진 이름으로서 둘을 잇는 사이 ㅅ이 들어갔다. ‘부노’는 부루노>불로>부노라는 변화과정에서 ‘ㄹ’ 받침이 탈락하였다고 이해된다. 과연 ‘부노’라는 일개면 혹은 마을 이름이 부루노>부노라는 큰고을 원주같은 땅을 감당/대표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충남 논산시의 유례를 참고삼아 살펴보면,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이전의 논산(論山)은 노성군 광석면 논산리였고, ‘놀뫼’•‘놀미’라는 자연마을 이름으로 불리어왔다.

 

  고대 지명 ‘평양’을 반드시 ‘부루나’로 소리 냈다는 더 이상의 증거는 찾을 수 없다. 당시의 발음을 적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근대 춤 이름에 ‘부루나’가 남아 있고, 이 춤의 본고장이 평양인 점은 ‘평양•부루나’를 같이 볼[等値] 유력한 근거가 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겉으로 보아서는 이 둘은 서로 닮지 않았다. 아울러 시간적으로 이들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다. 궁여지책 끝에 현대 강원도 원주의 한 지명 ‘부론-면’을 대입시켜보았다. 부론면은 1760년대 『여지도서』에서부터 등장한다. 그나마 ‘중간 지대’를 찾았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이제 안도와 희망을 전할 차례다. 2025년 6월 27일에 <춤, 맺고 풀다>(신명숙 기획)에서 부루나살풀이를 김춘희가 추었다(사진). 추정되는 땅 이름 ‘부루나’가 남아 있어 기적이고, 그 이름으로 살풀이가 간단없이 전승되고 있으니 이 또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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