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민의회 해외 사례들 2– 프랑스 벨기에를 중심으로
시민의회는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카나다 빅토리아주(BC) 아일랜드에서 시작되어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20여년 시행되고 있다. 대통령제 국가인 프랑스의 기회시민의회와 안락사(생애말기) 시민의회, 그리고 벨기에의 동벨기에 시민의회 역시 관심을 둘 만하다.
규모면에서 인구 7천만의 프랑스는 국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무작위로 구성된 150명 규모의 기후시민의회라는 도전을 했고 조금 더 규모가 크고 다양하게 참여한 184명의 생애말기 시민의회를 구성하여 모두 1년 정도 모임을 가졌다. 기후시민의회는 2019-2020년 9개월간 7차례의 주말(3일)동안 수십 명의 과학자, 경제학자, 법률 전문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며, 총 149개의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담은 46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비용으로 78억원(540만 유로)이 지원되었는데 여기에는 시민들의 교통비, 숙박비, 식비뿐만 아니라 참여에 따른 일당(보상금)과 전문가 자문 비용, 행사 운영비 등이 포함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시민의회를 국가적 차원에서 시도한 표준기준이 되었고 첫 사례였다. 그리고 2022-2023년 생애말기 시민의회는 4개월간 9회의 모임을 했고 참여 시민의 약 76%가 '조력 사망(안락사/조력 자살)'의 법적 허용에 찬성한다는 최종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실제 의료 현장의 목소리와 종교계, 윤리학계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했다.
아울러 인구 1천 2백만 벨기에 내 강력한 자치권을 가진 동벨기에는 2차 대전후 독일에서 벨기에로 편입된 지역이다. 벨기에는 3개 권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북부의 네델란드어권(680만명) 남부 프랑스어권(370만명) 수도벨지움(125만명) 인구 8만명의 작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점에서 비교해 봄직하다. 인구는 적지만 자체적인 의회와 정부를 가지고 있다.
2019년 상설 동벨기에시민의회를 도입하였는데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24명의 시민위원회가 18개월간 의제를 설정하고 다시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들이 참여하는 25-50명의 시민의회가 약 3개월동안 주말에 집중숙의를 하고 구체적인 정책권고안을 만든다. 시민의회가 제안한 권고안은 동벨기에 의회가 반드시 논의하고 답변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부여되어 있다. 1년후 실시 결과를 보고하는 것도 의무적이다. 즉 시민위원회가 의제를 정하고 시민의회가 학습 토론하여 정책대안을 만들면 정치인이 이를 검토하고 답변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프랑스 시민 의회의 운영 방식을 보면 단순히 인원수보다 얼마나 깊이 있게 참여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생업을 포기하고 참여하는 시민들을 위해 프랑스 최저임금 수준의 참여 수당을 지급하여 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프랑스 경제사회환경위원회(CESE)가 운영을 전담하며, 시민들이 제안서를 법률안 형태로 다듬을 수 있도록 법률 전문가 그룹이 밀착 지원했다. 무작위로 뽑힌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참여자들의 중도 이탈률은 매우 낮으며(기후 의회의 경우 거의 전원 완주),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매우 진지하게 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프랑스 시민의회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자기 평가(Self-evaluation)는 대체로 매우 긍정적이며, 개인의 삶과 정치적 태도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는 반응이 많았다. 참가자들이 인터뷰나 설문조사 등을 통해 직접 밝힌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4가지 핵심 포인트로 정리해 보면 첫째, 정치적 무력감에서 주권자로의 변화인데 가장 많은 참가자가 언급하는 부분이다. 이전에는 내가 투표해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가졌던 시민들이, 국가의 핵심 정책을 직접 다루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실제로 힘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평가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국가 정책의 공동 설계자가 된 기분’이라는 것이다.
둘째, 복잡한 사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지적 자신감이다. 기후 변화나 안락사 같은 주제는 매우 전문적이고 어렵다.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내가 이런 걸 결정할 자격이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으나, 숙의 과정을 거친 후에는 스스로를 충분한 판단력을 갖춘 시민으로 재평가하게 되었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면 평범한 시민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는 것이다. 셋째,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성숙한 시민성 체득이다. 다양한 배경(직업, 나이, 정치적 성향)을 가진 150~180명의 낯선 이들과 수개월간 토론하면서,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키웠다고 평가한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고, 비난이 아닌 토론으로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넷째, 일상생활 속의 실천적 변화다. 특히 기후 시민의회 참가자들의 경우, 스스로에 대해 '말만 하는 시민이 아닌 행동하는 시민'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의회가 끝난 후에도 자신의 지역사회에서 환경운동을 하거나, 생활습관을 완전히 바꾼 사례가 많다.
부정적이거나 아쉬운 평가도 있다. 제안서가 정부에 전달된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는 허탈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진지하게 임했는데, 마크롱 대통령이나 정부가 우리 제안 중 까다로운 것들을 제외하거나 수정하는 것을 보며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방대한 양의 결정을 내려야 해서 스스로 내린 결정이 완벽한지 확신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구경꾼에서 책임감 있는 주인공으로 거듭났다’고 평가했다. 이 경험은 개인에게 엄청난 자긍심을 주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노력이 정치적 수사로만 소비될지 모른다는 경계심 또한 동시에 갖게 만들었다. 정보와 시간이 주어진다면 복잡한 국가 난제에 대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믿음 이 생긴 것이다.
동벨기에 모델은 시민위원회와 시민의회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며 시민위원회는 24명의 시민이 18개월(6개월마다 1/3씩 교체) 동안 의제 설정 및 운영을 담당하고 시민의회를 구성하고 전문가를 섭외한다. 시민의회는 무작위 추첨으로 구성되는데 1차로 주명등록명부에서 수천명을 뽑아 초대장을 보내고 2차로 참여의사를 밝힌 시민을 대상으로 층화(성별 연령 지역 교육수준등 고려)추첨하여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약 3개월동안 주말 등을 이용해 3-5회 정도 모여 학습과 숙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결정된 권고안은 독일어권 의회의원이 시민들과 대면회의를 열어 논의한 후 수용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불수용시에는 그 이유를 공식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동벨기에 모델이 강력한 이유는 의회와의 법적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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