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홍명보호의 졸전에 비판이 쏟아진다. 전술 부재, 소통 단절, 책임 전가까지 모두 도마에 올랐다. 실제로 코트디부아르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한 경기력이나 준비 과정에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미디어에 들끓는 비판에 불편한 의문이 하나 떠오르기도 한다. 만약 승리했다면 어땠을까.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온갖 논란들이 그랬듯, 이번에도 '승리' 속에 조용히 묻혔으리라는 짐작은 지나친 냉소일 뿐일까.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결과 지상주의'는 과정의 공정성과 본질적 가치를 늘 뒷전으로 밀어낸다. 스포츠는 사회의 거울이다. 성과만 나오면 그만이라는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축구라는 그라운드 위에서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대중도 그걸 알기에 비판 대신 무관심을 택했다. 오스트리아전 합산 시청률은 1.1%에 그쳤다. 분노조차 아까워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감독이라는 ‘개인의 얼굴’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대표팀만 해도 그렇다. 클린스만부터 홍명보까지, 대한축구협회(KFA)의 방식은 '행정'보다는 차라리 근대 이전의 '통치'에 가까웠다. 시스템은 무력했고, 전문가는 무시당했으며, 소통은 단절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듯, 규정보다 '회장님 의중'이 우선인 구조 속에서 한국 축구의 전문성은 서서히 고사하고 있다. 독선이 구조를 잠식하고, 잠식된 구조는 다시 불모의 철학과 시스템을 낳았다. 지금의 졸전은 개인의 능력이나 불운의 소산이 아니다. 독선과 불통이 누적되며 태어난 비합리적 구조의 필연적 결과다.
감독 한 명 바꾼다고 이런 현실이 해결될까? 홍명보 감독은 최근 저조한 성적의 원인을 선수들의 피지컬, 전술 이해도 부족 등 '선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앞서 경질된 클린스만 감독이 보여준 '책임 회피'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국적과 이름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구조의 산물이다. 잘못된 구조는 누가 '얼굴'이 되든 결국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손흥민, 이강인 같은 스타들은 한국 축구의 체계적인 육성 덕분에 성장한 것이 아니다. 부모의 헌신, 본인의 노력, 그리고 어린 나이부터 접한 선진 시스템이 그들을 만들었다. 협회와 대표팀은 선수의 성장에 필요했던 합리적 환경과 동기부여는 제공하지 못한 채 선수의 성취에 뒤늦게 '애국'의 깃발만 꽂으며 영광을 독식하려 든다. 선수가 쓰러지면 '근성'과 '투지', 나아가 ‘애국심’ 부족을 탓하면 그만이다. 축구만 그럴까. 한국 배드민턴계가 안세영을 어떻게 대했던가. 한국 스포츠는 개인의 재능과 그 성과를 구조적으로 착취하는 방식을 반복해왔다.
결과에 일희일비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 전면적인 인적 쇄신과 시스템 복원이 선행되지 않는 한, 제2의 클린스만, 제3의 홍명보는 계속될 것이다. 개인의 재능을 착취하고 그들의 헌신에 기생하여 철학과 시스템을 죽이는 구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얼굴'을 바꾸는 눈속임이 아니라, 그 얼굴 뒤에 숨은 진짜 문제와 대결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 축구, 나아가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진정한 시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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