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칼럼] 역사적 사실에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을까?- 5.18 광주 망언에 부쳐 -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 · 18 망언에 대해 나경원 대표가 유감을 표명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다양한 의견이 보수 정당의 생명력”이라고 했다. 맞는 말일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까닭은 진실에 도달하는 관문이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성 자체를 목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된 인식이다. 따라서 일단 진실이 확인되었으면 더 이상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 5 · 18 광주항쟁은 아직 진실이 밝혀지기 전인가? 아니다. 신군부의 만행에 맞선 시민들의 정당한 저항이고 민주화운동이었다는 게 움직일 수 없는 진실로 확인된 지 오래다. 자한당 의원들의 발언을 단언컨대 망언이라고 할 수 있는 까닭이다.
역사학자 E. H. Carr는 “역사란 해석을 의미한다.” 라고 했다. 그러면 나경원 대표의 말이 맞는가? 아니다. 맥락을 살피지 않고 거두절미해서 편의적으로 써먹으면 안 된다. 카의 얘기는, 사실은 스스로 말하기 때문에 역사란 사실을 모아놓는 것이라고 했던 실증주의 사관을 비판한 것이다. 역사가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실들을 수집해서 해석을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해석이 보편타당한 것으로 인정되면 그것이 곧 역사가 되는 것이다. Carr는 역사학도 과학처럼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는 각도가 다를 때마다 산의 모양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해서 산에는 객관적인 모양이라는 것이 본래부터 없다든가 무한한 모양이 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사실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해석이라는 것이 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해서, 또한 현존하는 해석이 어느 것이고 완전히 객관적인 것이 못 된다고 해서 이 해석이나 저 해석이나가 모두 매한가지라든가 역사상의 사실이란 본래부터 객관적 해석에 의하여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든가 하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학을 비롯하여 사회과학(역사학도 사회과학이다)이 공통적으로 빠지기 쉬운 오류가 해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하나의 진리는 없다는 상대주의로 귀결된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진리의 상대성을 입증해주었다고 착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상대성이론에서 상대성이라는 것은 경험의 상대성이지 진리의 상대성이 아니다.
물리학자들도 아주 가끔은 해석이라는 걸 한다. 양자역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각자의 해석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한 현상에 대해 물리학자들이 모여 합의를 한 것이다. 오늘날 이 해석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는 물리학자는 없다. 객관적인 진실에 대해서는 하나의 해석만 있을 뿐이다.
미국의 물리학자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철학자들이 “사물의 겉모습만 보고 우리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정작 문제의 핵심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라고 비판했다. 철학자뿐만이 아니다. 사회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사실만 붙들고 애쓴다는 것이다. 기자들의 사실 숭배는 정평이 나 있다. 해석은 제각각이다. 같은 사안들 두고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의 기사와 사설이 다르다. 둘 다 옳을까? 아니다. 진실은 하나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허위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을 선택하고 해석하는 것은 역사가의 임무다. 광주항쟁은 역사가들이 개입하기도 전에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사실들을 수집했고 합의된 해석이 내려졌다. 역사가들도 인정했다. 이제 와서 다른 해석을 하는 역사가가 있다면 그는 사이비일 것이다. ‘사이비’라는 표현은 Carr가 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이나 시스템 전문가 따위가 이미 합의된 해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말을 한다든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든지 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요 무모한 짓이다. “다양한 의견이 보수 정당의 생명력”이라는 말도 후하게 쳐서 반만 맞다. 당론을 정한다든지 사회적 합의를 해나가는 과정에서는 독선을 막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지만 거기까지다. 사회과학자 다운 어정쩡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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