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매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의 3월 10일 방송은 뜨거웠다. <‘민족정론지’ 조선 · 동아, 백년의 침묵>이라는 타이틀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민족정론지라는 허구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의 행적과 지금까지 미치는 영향을 시원하게 분석해냈다. 올해가 3 · 1운동 100주년, 내년이 두 신문의 100주년이라는 점에서 한 기획이다. KBS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한국 언론의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학자들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얘기를 하기 때문에 주관적인 해석에 팩트가 틀리기도 하고 누락도 된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는 장부승 교수는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 1시간을 통으로 할애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내용을 보다 더 압축적으로 보여주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송수진 기자가, 초반에는 조선총독부가 압수한 기사 목록이 굉장히 많았는데 1940년으로 갈수록 압도적으로 줄어들고, 총독부 구미에 맞는 기사들을 쓰기 시작하더니 친일적으로 바뀌게 된 상황이 있었는지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실장은 1937년의 중일전쟁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압수되거나 정간 처분된 기사들은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지노선을 넘나드는 최소한의 비판 기사들이었는데, 그마저도 제1차 세계대전의 덕으로 호황을 누리던 경제가 1920년대 후반 농업분야 공황과 세계대공황으로 진행하면서 사라졌다. 그만큼 총독부의 기준이 강화되고 그 기준에 부응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일본은 경제위기를 만주침략으로 돌파한다. 이후로 장부승 교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한글보급운동 등 민족문화운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실은 이것도 문맹률이 80%에 달했던 상황에서 독자시장을 개발하기 위한 상업적 전략이었다. 그리고 중일전쟁으로 두 신문은 노골적인 친일기사와 사설 등을 쏟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 신문은 광고 수입에 의존했는데, 당시 광고는 조선의 시장에 진출한 일본 상품들의 광고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한글보급운동으로 독자를 확장하려는 의도도 광고주를 의식한 활동이었다. 광고 유치를 위해 일본 기업의 광고주들을 초대하여 금강산 관광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신문에 독립의식 고취와 항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따라서 초기에는 분위기가 허락할 때 긴장관계를 조성하는 것처럼 처신했으나 오래가지 않고 종국에는 적극적이고 노골적인 친일로 기울었던 것이다.
두 신문은 그렇게 ‘대일본제국의 언론기관’이 되어 충성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1940년 8월 10일 폐간하게 된다. 그 원인에 대해 방학진 실장은 총독부 기관지지만 한글로 발행하는 매일신보가 있기 때문에 중복을 피하기 위해 폐간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에 순응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정준희 교수는 “폐간이 저항의 결과로 폐간이 아니라, 사실은 순응으로 쭉 유지해 왔던 생명을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지니까 사라지게 된 거거든요”라고 했다.
매일신문이야 합병 초기부터 있었으므로 20년이나 지나서야 하필 이때 폐간시킬 때에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같은 한글신문이라도 독자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충성을 바치는 신문들을 폐간시킬 까닭이 없다.
총독부의 두 신문 폐간 결정은 중일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물자가 부족해지자 신문 발행을 전체적으로 줄이기 위한 1현1사 정책으로 신문사 통폐합을 단행했던 정책의 일환이었다. 전선에 보낼 군인들이 부족해지자 조선 청년들에게도 지원병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조선과 동아가 지원을 부추기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모든 역량을 전쟁에 쏟아 부어야 하는 상황에서 신문용지와 유류를 절약하기 위한 고육책으로서 일본 정부가 세운 방침에 따라 총독부는 두 신문의 폐간을 통보하고 일체의 보상을 해줌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즈음 일제는 나치독일과 동맹관계를 맺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물자부족은 더욱 심화되었다. 두 신문이 지금도 강제폐간이 항일의 근거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의 제호 위에 일장기까지 올려놓는 등 노골적으로 친일의 색깔을 드러낸 지면을 본 장부승 교수의 반응이다. 업무상 북한의 노동신문 분석을 많이 했다면서 한 말이다.
“찬양이라든가 미화라든가 일방적인 당의 입장, 이런 게 계속 나오니까. 그런데 오늘 이 1938년, 39년, 40년 이때 나왔던 기사들을 보니까 노동신문 보는 느낌이에요, 지금. 그래서 이걸 보면서 ’아!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언론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런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에게 언론은 사회적인 의견을 가지고 반영하는 창구라든가, 사회적으로 토론이 이루어지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자기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스피커인 거죠, 스피커. 그러니까 군대 팸플릿(pamphlet) 같은 기사들이 나오는 거죠. 참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일제시대 친일신문 지면을 보면서 노동신문을 떠올리는 발상도 해괴하거니와 자본주의 사회의 신문과 사회주의 사회의 신문의 다름을 생각하지 못하고 방송에서 용감하게 얘기하는 무지함도 놀랍다. 양 진영 신문의 역할과 기능은 다름의 문제이지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양 진영은 뉴스의 개념부터가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문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스피커 노릇을 하지 않는가? 북한에는 노동신문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양한 신문들이 나름대로 여론을 경청하고 소통한다. 전체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의 진행에서 생뚱맞은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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