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리영희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내가 '국가보안법' 헌소를 제기한 이유

고승우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상임공동대표 | 기사입력 2019/06/05 [09:17]

오늘날 리영희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내가 '국가보안법' 헌소를 제기한 이유

고승우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상임공동대표 | 입력 : 2019/06/05 [09:17]

이영희 선생님은 70-80년대 반공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국내 상황에 도전해 세계 주요 정세 속에서의 한반도 문제를 조명하는데 기여하셨고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충격이었다. 이 선생님은 베트남 전쟁에서 드러난 미국의 침략성과 모택동과 중국, 한반도 핵문제 등에 대해 날카로운 필봉을 과시하시면서 사회적 의식화를 선도하셨다. 이 선생님은 한겨레신문 창간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셨고 연로하신 상황에서도 세계를 살피고 그 실체를 파헤치는 작업을 계속하셨다.

 

이 선생님은 현역 기자생활 당시 국내외 정세를 살펴 언론을 통해 현상분석과 대안 제시에 탁월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오늘날 선생님이 생존해계신다면 비핵화, 남북관계 등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틀림없이 국가보안법 폐기와 한미동맹 정상화를 강조하셨을 것이다. 이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좀 더 과학적이고 활발한 통일언론 보도와 운동이 전개되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이 선생님은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대미, 대북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법하다. 본인은 이 선생님이 몸 담으셨던 옛 합동통신, 한겨레신문에서 근무했었고 좋은 말씀도 많이 들으면서 배우는 행운을 누렸다. 선생님의 명복을 간절히 비는 의미에서,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두 개의 쇠말뚝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국가보안법에 대해 본인이 헌법소원을 제기 이유를 간략히 소개해 드린다.

 

한미동맹과 국보법 헌소를 제기한 이유

 

국가보안법은 친일세력들이 해방정국에서 제기된 친일 청산요구를 빨갱이로 몰 수 있었던 보신책이었고, 한미동맹은 6.25 발생 직후 대마도로 도망가 임시정부를 세우려 했던 이승만이 미국에게 퍼주기를 한 20세기 최대의 불평등 법이다. 수구세력이 국부로 모시려는 이승만이 앞장서 만든 국보법과 한미동맹은 수구 보수세력이 반세기 가까이 집권할 수 있었던 최대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국가보안법 제 2조, 제 3조, 제 4조, 제 6조, 7조, 10조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보법 2조는 반국가단체 정의, 3조는 반국가단체 구성, 4조는 목적수행, 6조는 잠입·탈출, 7조는 찬양·고무, 10조는 불고지에 대한 것으로 대표적인 독소조항들로 지적되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당시 위원장 김창국)는 지난 2004년 8월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게 “국보법은 제정과정부터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보법은 법률의 규범력이 부족한 법으로 그 존재 근거가 빈약한 반인권법”이라며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 1964년, 서울 동대문 밖 제기동 미나리밭 가운데 처음 장만한 '내 집' 마루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리영희 선생. (사진=리영희재단)   

 

권력 장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친일세력이 만들어 놓은 국보법은 초등 및 고등교육 교과서 전반을 검열하고 일상적인 언론보도를 통제한 최대, 최악의 보도지침이다. 청소년들이 통일을 먼 나라 이야기처럼 하는 현실은 국보법이 허용하는 좁고 왜곡된 사상. 이념 공간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에게 당연한 논리적 결론이다. 언론은 국보법을 의식한 자기검열을 체질화한 나머지 국보법을 의식치 못한 채 언론자유를 이야기하는 기이한 상황이다.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4조는 미군의 한국 배치를 권리(right)를 한국은 허용(grant)하고 미국은 수용(accept)하게 되어 있다. grant, accept는 조건 없이 주고받는 의미의 외교용어다. 미국에게 슈퍼갑의 위치를 보장한 4조에서 SOFA(정식명칭 -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SMA[방위비분담 '특별협정 - SOFA 5조(주한미군에 대한 시설과 구역은 한국이 제공하고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내용)의 적용과 관련한 예외적, 특별 조치]가 파생되었다. 최근 트럼프가 주한미군 주둔비를 한국이 100%부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4조를 근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어느 누구도 법적 근거를 이야기하지 않는 한심한 상황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보장된 특권에 이어 전시작전지휘권까기 장악한 미국이 북한 선제공격 카드를 대북 협상 또는 위협용으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한미동맹 4조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택 미군기지가 미군 해외 기지 가운데 최대인 것은 부끄러운 한미관계의 상징으로 한국이 미국의 군사적 식민지를 방불케 하는 대미종속성의 대표적 사례다.

 

▲ 1953년 우남 이승만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John Foster Dulles)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가조인 직후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 기록관)     © 군포시민신문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운동권은 한미동맹을 원론적으로 거론하는 것을 지난 수 십 년간 극력 회피해왔다. 사드 사태는 한미동맹에 의해 배치된 것인데도 새 정부조차 박근혜 정권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바로 이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진실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언론도 필리핀, 일본이 미국과 맺은 동맹관계와 한미의 그것을 비교만 해도 그 실상이 분명해질 터인데 이른바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곳에서도 그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66년 그 문제점 등이 상세하게 분석이 되고 국회에서 논의가 활발했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국보법과 한미동맹이 현재의 상태로 온존되는 한 비핵화, 남북교류.협력이나 평화통일 노력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국보법, 한미동맹이 만들어질 때와 오늘날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북측의 그것에 비해 30-40배에 달하고 남한은 세계 최대 무기수입국의 하나가 되었다. 북한은 정치, 언론의 자유가 없으며 아시아 최빈국의 하나다. 그런데도 냉전시대의 악법을 유지하면서 북한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유지시키려 하는 것은 심각한 국민기만이고 세계적 수치다.

 

촛불로 들어선 정권이 과거 정권과 같은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된다. 미국이 자국 군대와 무기를 자국 영토에서 보다 싼 비용으로 관리할 수 있고 핵무기까지 제 마음먹은 대로 주둔시키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와 학계 등은 한미동맹관계를 온존시킨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21세기의 험난한 국제 경쟁 속에서 남북평화통일 등을 추진하려는 기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상상력이 그 성패를 좌우하는 것인데도 국보법은 남북한을 포함시킨 평화적인 미래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면서 남한의 미래학은 그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국보법에 의해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억압되고 한미동맹에 의해 남한이 한반도 당사자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후손에게 불행한 조국을 물려주는 과오를 피할 수 없다. 그것은 기성세대의 추악한 직무유기이며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조선말기보다 더 한심

 

언론은 더 이상 자기 검열을 일상화하는 타성에서 탈피하고, 비핵화 국면에서 세계 경제력 12-13위권인 한국이 제 역할을 하도록 견인함으로써 한반도 평화통일은 물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이 달성되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한미동맹 관계에서 한국이 자율적인 주권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는 현실은 1백 여 년 전 조선 말기의 외세에 휘둘리다 나라가 망했던 시절을 연상케 한다. 조상들이 범한 과거의 치욕은 교통, 통신이 발달치 않아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탓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정보 최강국인 한국에서 국제적인 웃음꺼리가 되도록 언론 등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정말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향후 남북관계를 전망할 때, 남북은 남측의 여야가 정권장악을 위해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속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식의 경쟁관계로 가도록 하는 것을 고려해 볼만하다. 이념대결은 냉전시대와 함께 종식된 것이고 무력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6.25를 통해 검증되었다. 이런 점에서 국보법과 한미동맹을 정상화 시키는 방안에 대한 언론의 격렬한 토론과 방향 모색이 절실한 때다. 정상화는 폐기에서부터 합리적인 조정 등 그 범위가 넓어 공론화 과정이 절실하다.

 

참고로 필리핀과 미국의 방위협정에 따르면 미군은 필리핀에 항구적 기지를 만들 수 없고 필리핀 부대기지 내에서 주둔해야 하며 필리핀 국내법을 준수하고 무력사용 시 안보리에 즉각 보고해야 하며 핵무기를 절대 필리핀에 반입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일본과 미국의 방위협정은 미군의 일본 주둔이 권리가 아니며 조약의 유효기간은 10년이고 조약의 적용에 대해 수시로 협의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 특징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무기한 유효하다고 되어있고 그 폐기는 한 당사국이 통보한 후 1년 후에 종지된다. 이 조약에 따르면 한반도 분쟁 발생 시 유엔 등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한반도 유사시 중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 한반도는 자칫 군사강대국들의 분할 점령과 같은 외세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남북이 자율적으로 주변국가와 협의하는 방식으로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 한반도 영역을 한민족의 영토로 유지하고 동북아 평화를 견인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이 때문에 국보법은 시급히 폐기해야 하고 한미동맹은 한국 대통령이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에 의해 폐기를 선언한 뒤, 불가피하게 동맹을 유지한다 해도 필리핀 식으로 하는 방법 등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국보법이 없는 상황이 될 때 언론 등이 모든 개연성을 변수로 한 한반도 미래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심리전, 선전전만이 언론을 통해 난무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미래 추진은 불가능하다. 향후 남북관계는 국내의 여야가 권력 장악을 위해 다투는 것처럼 평화적 공존과 경쟁이라는 틀 속에서 추진되어 평화통일의 목표가 달성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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