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야미에 가보지 못한 군포 사람들의 대야미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대체로 반월저수지와 주말텃밭을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분명히 대야미는 군포시의 각종 자연 생태계가 어우러져 있는 천혜의 보고이다. 이정도만 소개해도 이 마을의 매력은 철철 넘치지만 만약 대야미에 조선의 숨결까지 품고 있다면 어떤가?
1월 29일 답사팀은 상당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도 더 많은 인원이 모여서 대야미에 묻혀 있었던 양반가의 멋과 흥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나섰다. 우리의 여정이 더 의미 있게 진행되기 위해 열린사회연구소 이진복 소장이 동행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서석 김만기 선생의 묘역이었다. 김만기 선생은 광성부원군으로서 숙종의 장인이 되는 사람이었다. 김만기 선생을 포함하여 3대가 문형(文衡)이라 불리는 대재학을 역임하였는데 이는 유학을 숭상하는 조선에서는 ‘최고의 가문’이라는 칭호를 받을만한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이처럼 대단한 인물과 가문의 묘역이 군포시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조선 양반가의 멋을 담고 있는 김만기 선생의 묘역은 허리가 잘려 있는 상태였다. 해당 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별 다른 평가 없이 일방적으로 조치한 결과였다. 얼마나 많은 군포의 향토문화가 방치되거나 훼손되었을까 염려되는 부분이었다.
이처럼 수리산 자락은 풍수지리상으로 뛰어났고 그 만큼 명문가들의 후손이 여전히 살거나 다양한 묘역들이 산재해 있을 수 있었다. 즉, 대야미는 조선 양반가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서 그 보존 가치가 상당히 뛰어난 문화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필자 역시 역사 전공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네 군포에 이러한 조선 문화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부끄러웠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신도비가 있는 자리였다. 신도비는 왕이나 종2품이상의 벼슬을 지낸 분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신도비의 의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아무나 막 세우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오히려 조상을 욕보이는 일이다. 그 만큼 김만기 선생을 포함한 그 가문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소중한 양반 문화의 진수이기도 했다.
날씨가 너무 추운 관계로 대야미 마을협동조합 뜨락 사무실에 가서 아직 맛보지 못한 양반가의 멋과 흥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함께 둘러본 묘역을 포함하여 대야미 곳곳에는 조선의 사대부문화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있었다. 덕고개 쪽에 있는 숙정공주묘를 포함하여 대감마을도 그 중 하나였다. 특히 군포지역에 부마와 부원군의 묘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유의미한 지점으로서 또 다른 조선 사대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문화 유적지이다.
이처럼 대야미 마을 곳곳에 조선 양반가의 멋과 흥을 느낄 수 있는 문화가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석 김만기 선생의 묘역의 허리가 동강 나듯이 양반의 멋과 흥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점차 사라지거나 훼손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대야미 공공주택을 둘러싼 논의에 환경문제가 배제된 상태에 놓였듯이 양반가의 멋과 흥도 함께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 속에서 우리의 이번 주 답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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