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명의 바이칼, 시베리아를 가다] 알혼섬 몰로예 모례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싸이베리아 여행기’ (9)

신선임 안선선부중학교 교사 | 기사입력 2018/11/24 [13:36]

[샘명의 바이칼, 시베리아를 가다] 알혼섬 몰로예 모례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싸이베리아 여행기’ (9)

신선임 안선선부중학교 교사 | 입력 : 2018/11/24 [13:36]

[편집자주] 대야미 속달동 주민 신선임 씨와 가족들은 지난 겨울 아프리카 여행에 이어 이번 뜨거웠던 여름에 러시아 바이칼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이에 매주 토요일 러시아 여행기 ‘생명의 바이칼, 시베리아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예약한 투어 시간에 맞춰 바이칼 식당에서 급하게 아침을 시켜 놓고 앉아 있는데 남루한 옷을 입은 부리야트인 사내가 검은 비닐봉지를 아무렇게나 들고 들어온다. 사내는 우리 앞에 서더니 비닐봉지에서 나무 조각을 꺼내어 100루블(1700원)이라며 내민다. 조악한 나무 조각이다. 거절했더니 다른 조각을 내민다. 생각 없이 다시 거절했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뒷모습을 보이며 유리 문 앞으로 사라져 간다.

 

한 때 유목민족으로 광활한 대지를 달렸던 부리야트 인들은 수 천 년 동안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았던 원주민이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이 땅으로 흘러 들어온 외지인들에게서 그들의 터전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였다. 우리와 모습이 너무나 닮았기에 그의 뒷모습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 몰로예 모례     © 군포시민신문

 

오늘은 여객선을 타고 몰로예 모례(Молое Море)와 주변 섬을 둘러보는 여정이다. 몰로예 모례는 부리야트어로 작은 바다라고 한다. 그렇게 넓은 국토임에도 북극해를 제외하고는 바다를 보기 어려운 러시아인들에게 수평선이 보이는 바이칼은 과연 바다로 불릴 만하다. 알혼섬의 동쪽과 비교해 볼 때 서쪽 해안과 대륙 사이에 있는 폭이 좁은 해협은 그리하여 이런 이름을 얻었다. 그럼에도 배로 2시간가량이나 지나서야 닿게 된 Ogoi Island는 샤먼들에게 신성한 장소라고 한다. 섬에 도착하여 바로 배를 댈 수 있을 만큼 해안가도 꽤나 수심이 깊은가 보다.

 

언덕 맨 꼭대기에 세워진 라마 불교의 Oron stupa(사리탑)로 올라가는 길은 주변에 온통 야생화 천지다. 여름이 짧은 이곳에서 꽃을 피우고 씨를 뿌리는 임무는 제한된 시간 안에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이다. 여름이 짧다고 해서 자연에게서 부여받은 임무를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영원히 멈춘 듯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도 여기 벌들과 야생초의 야단스러움은 생기를 더하고 있지 경박스럽지 않다.

 

▲ 몰로예 모례     © 군포시민신문

 

이제 사람들은 신발을 벗더니 스투파 둘레에 깔려 있던 넓적한 돌 위를 걸으며 돌기 시작한다. 시계 방향이다. 그들은 각기 다른 마음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통일된 행동은 숭고함을 자아낸다. 이태리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수도원 지하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의 무덤 주위를 둘러 싼 사람들의 기도는 그들의 인종과 민족, 연령을 초월해서 절실함이 느껴졌고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오고이 섬에 머무는 1시간 내내 스투파 주위를 도는 행동을 반복한다. 단순하고 반복된 행동을 통해 사람들은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비우는 명상 속에 들어가게 된다. 어느덧 돌다 보면 걷고 있는 자신의 다리가 몸의 일부로 느껴지지 않고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주위의 풍광 속에 나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바람처럼 가벼워지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래, 나는 차라리 떠도는 바람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내가 있었고 내가 죽은 후에도 나는 계속 있을 것이다. 나는 바람이 되어 이 곳 오고이 섬을 온 적이 있고 내가 죽은 후에도 다시 여기를 지나갈 것이다.

 

▲ 몰로예 모례     © 군포시민신문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자 나는 지상으로 다시 끌어내려진다. 출발할 때 흐렸던 하늘은 온데 간 데 없이 맑게 갠 파란 하늘이다. 따뜻한 햇볕을 받자 갑자기 배고픔이 느껴진다. 언덕을 내려왔더니 여객선의 식당 칸 테이블에 맛난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세상에! 도시락이 아니었다. 여객선 주방에서 정식으로 요리해서 나온 따끈따끈한 러시아 음식이었다. 토마토소스와 고기로 끓인 스프인 샬론카가 한 포트 가득 나왔다. 한 스푼 입에 넣는 순간 몸이 완전히 녹아내리는 듯하다. 그래 살아있는 게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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