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人生이 있었네. 풀잎같은 人生. 봄날 기차같은 人生. 새하얀 구름같은 人生. 강아지같은 人生.
-하나의 인생이 있었네 중에서
A: 시 쓰는 역무원으로 기사가 났었네요?
원래 기관사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신문배달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서 장애인이 됐어요. 기관사는 운전을 해야하는데 사고로 손도 못 움직이게 됐으니까 학교에서 난리가 났죠. 졸업장이라도 따고 싶다고 얘기하니까 학교에서 경영정보학과로 옮겨갈 수 있게 도와줬어요. 그렇게 지금 역무원이 됐어요.
A: 다쳤을 때 시가 힘이 됐나요?
스스로 재주가 많고 삶을 즐길 줄 안다고 생각했어요. 축구, 풍물, 기타연주, 노래…그런데 다치고 나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누워서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는 거죠.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어서 재활운동도 안 나가고 누워만 있었어요. 이제 즐길 수 있는 게 없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땐 펜을 잡을 수도 없었으니까 시 쓰는 것도 못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방법이 있었더라구요.
A: 그 방법이 뭐였나요?
재활원에 컴퓨터 수업이 있었는데 손가락에 보조기구를 끼워서 타자를 치더라고요. 손가락에 끼울 수 있는데 앞이 길게 튀어나와 있어서 키보드를 누를 수 있어요. 그때부터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엄청 설레기 시작했어요. 시상이 떠오르면 컴퓨터 앞에 앉고 싶어서 버틸 수가 없었어요. 한번은 자기 전에 공지영 작가의 고등어를 읽었는데 너무 좋은 거에요. 서평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딱 들었는데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을 수는 없었어요. 그냥 계속 생각만 하는거에요. 이게 좋았고, 어땠고…잠도 안자고 서평 생각만 하다가 아침 7시에 엄마가 일어나자 마자 컴퓨터 앞에 앉혀달라고 했어요. 글을 쓴다는 건 설렘이었어요.
A: 그때 쓴 시가 '하나의 인생이 있었네'죠?
활동하던 단체 게시판에 쓴 글들을 올리는데 기자분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 분이 제 기사를 내주시면서 소개가 됐어요. 기사 나가고 모금된 돈으로 노트북도 샀고요.
A: 블로그에 올리신 글들이 오래됐어요.
한 4~5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아지면서 마음이 위축됐어요. 몸도 마음도 안 따라주니까 대인관계도 줄어들고, 의욕도 사라지고…다시 설렐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어요. 글짓기도 좋고, 유튜브 방송도 좋고. 유튜브를 하게 되면 시 읽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내 시도 좋고 옛날 백석 시인의 시도 좋고 아니면 사람들의 시도 좋고. 같이 읽으면서 감상을 공유하고 싶어요. 그런데 유튜브 방송하기를 눌러보니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많이 어려워요.
A: 재밌는 사연이 담긴 글이 있나요?
‘녀’라는 시가 있어요. 여자친구 헌정 시였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회사에서 이 시를 인쇄를 하게 됐어요. 회사니까 그냥 뽑으면 눈치도 보이고 부끄럽잖아요. 그래서 다른 서류 사이에 섞어서 인쇄를 눌렀죠. 후배가 인쇄된 서류를 가져주는데 조마조마 했죠.시는 봉투에 넣어서 잘 전해줬어요. 참 글은 동기가 있을 때 잘 써지는 것 같아요.
女
벚꽃 이파리같이 조그만 女子가 나에게 왔네 푸른 언덕같은 女子 여름날 소나기같은 女子 철교위 기적소리같은 女子 새하얀 백조같은 女子 소피의 미소같이 새하얀 女子
하늘거리며 내 손에 와 닿았지만 어디서 왔는지는 한밤 기억을 더듬어도 모르겠네 어느 적막한 겨울 골목길이었고 멀고멀다는 그 우주 한복판. 길 잃은 소녀행성이었네 한 줄기 은하수처럼 하늘거리며 나에게 왔네
그녀의 다리가 건강해서 사랑했네 그녀의 피부가 보드라워서 사랑했네 그녀의 머리향기가 아름다워서 사랑했네 그녀의 키가 작아서 사랑했네 알아듣지못할 말을 해서 사랑했네 멀리 여행을 가버릴것같아 사랑했네 그녀가 옆에서 하얗게 늙어버릴것 같아 사랑했네
오늘 밤에도 서동과 선화가 지나다닌다는 저 뒷마당 탱자나무에 서리가 하얗게 앉을 것이네
'08. 02.08새벽녘...
<저작권자 ⓒ 군포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