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14세 용감한 형제의 남도 여행기 ③

김건아, 김연우 형제의 여행 이야기

김건아 | 기사입력 2022/02/23 [10:11]

18세, 14세 용감한 형제의 남도 여행기 ③

김건아, 김연우 형제의 여행 이야기

김건아 | 입력 : 2022/02/23 [10:11]

편집자주) 군포시 대야동에 사는 18살, 14살 청소년 형제가 여행을 떠났다. 25일간 대구에서 시작해서 전주에서 마치는 코스로 영호남 이곳 저곳을 떠돌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 비용은 ‘가양주작 양조장’ 알바로 번 돈, 가족 친지들의 용돈 그리고 ‘한무리나눔장학회’의 장학금을 모아 마련했다. 매주 한편 씩 형제가 보내온 여행기를 4주간 연재한다. 


 

 

마산에서 진주로

 

  오늘 아침은 어제 먹다 남은 빵과 딱 두개만 사온 사과로 해결했다. 사과에 묻어있을 농약은 어쩌지 하냐란 걱정으로 물에 담가놓으려는데 사과를 담가놓을 용기가 마땅찮다. 볼이나 대야, 그릇은 당연히 없었고 세면대에 하자니 마개가 고장났고, 옆에 있는 욕조를 힐끗 봤는데 개를 씻기는데 쓸 순 없었다. 별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쏟는 습관이 뛰쳐나와 머리를 열불나게 돌렸다. 마침내 메시아가 눈에 띄었다. 유명빵집 고려당의 상표가 붙은 비닐봉지에 물을 넣었더니 빵빵해지며 기똥차게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거기에 사과를 담갔더니 20세의 젊은 비닐이 100세 늙은이가 되어 픽하고 쓰러져 버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비닐이 사과를 품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 덕분에 건강한 사과를 먹을 수 있었다.

 

  12시쯤에 체크아웃을 하면서 감사히 잘 쉬었다고 말씀드렸다. 우리가 마산시내를 둘러보고 올때마다 주인장 아주머니가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해 놓으셨는데, 이런 서비스가 거의 처음인 나는 감사함를 느꼈고 형식적 인사에 조금 마음을 담았다.

 

 마산을 뒤로하고 진주로 향했다. 진주에는 작은 고모 식구가 살고 있다. 숙박비도 줄이고 오랜만에 친척들도 보는 일석이조다. 도착하여 짐을 풀고 고모가 해주신 점심을 먹은 뒤 진주성으로 갔다. 성곽을 둘러보니 요새같은 느낌이 났다. 진주성이 등지고 있는 남강 때문에 더욱 그랬다. 풍경은 아름다웠고 먼 옛날 이 성에 살았을 사람들이 남강을 보며 느꼈을 군사적, 경제적 든든함이 전해지는 듯 했다. 성곽에서 우리 형제는 논쟁을 벌였다. 성곽 벽에 규칙적으로 나 있는 네모난 구멍은 뭘 하는데 쓰이는 것인가? 연우는 총통을 쏘는 구멍이라고 했다. 나는 벽 뒤에 숨어서도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아마 두가지 기능을 전부 하지 않았을까? 사실 형제의 논쟁은 서로 시비걸고 싶어서 일어난다는 점을 이해해야한다. 

 

▲ 진주성 대장루로 올가가는 성곽길 (사진=용감한형제)


  진주성에서 돌아와서 고모가 해주신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우릴 재워주시는 데에 대한 작은 대가를 치렀다. 설거지를 도와드리는 것으로. 너무 적게 도와드려서 죄송하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그보다 더 클듯하니, 나머지는 외상으로 해야겠다. 

 

여수에서 

 

  여수에 도착하자 마자 신기한 것과 마주쳤다. 청소년은 단돈 100원만 내면 버스를 탈 수 있다. 진짜 백원만 찍히는 걸 봤을 때 소소한 기쁨이 느껴졌다. 이렇게 시민들에게 대중교통비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좋은 정책인것 같다. 여수 청소년 다음엔 모든 여수 시민, 그 다음엔 모든 대한민국 시민들이 100원만 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면 좋겠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오동도라는 작은 섬이 있었다. 방파제길이 육지와 섬을 잇고 있었는데 가보니 사람이 바글바글 했다. 경주 첨성대 이후로 관광지의 그 정신없음이 느껴졌다. 그래도 한번 둘러보고 싶어서 섬으로 건너가 작은 동산을 올랐다. 가끔 암벽쪽으로 빠져서 기가 막힌 바다 풍경도 구경했다. 그러다 보니 목이 말랐다. 근데 물을 안가져 온 것이다. 그만 돌아갈까 하다가 이런 곳에는 시원한 걸 파는 가게가 있다고 기대하며 계속 걸었다.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역시 가게 하나가 있었다. 음료를 파는 곳이었는데 주인이 없었다. 절망하려는 순간 가게 옆에 있는 자판기가 눈에 들어왔다. 우린 ‘살았다’를 외치며 천원짜리 두장을 넣었고 음료 두개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굴러 내려왔다. 근래에 마신 음료수 중 최고였다. 

 

  남파랑길이라는 유명한 길도 한번 가보았다. 숙소가 위치한 여수 서쪽이었는데 동쪽 끝에 있는 남파랑길 59코스로. 여수를 동서로 횡단해야 했다. 우린 여수 시내까지만 버스로 가고 나머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네이버 지도 때문에 생겨난 걷기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네이버 지도가 쭉 그어 놓은 선은 그 자체론 믿을게 못된다는 걸 배웠지만 처음부터 걸어갈 길이 너무 길었다. 지도를 확대해서 보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이건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바라보는 사람이 "음.. 태평양은 한걸음에 건널 수 있겠는데?" 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길가에 심어진 식물들을 스쳐 지나갔는데 바지에 가시처럼 생긴 씨앗을 박아 넣어 고슴도치 패션을 창시하게 되었다. 그 모습을 내려 본 순간 짜증이 감당 못할 정도로 치솟아 그냥 확 돌아가 버릴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하는 반론이 뛰쳐나와 딜레마를 만들어 냈고 그 속에서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남파랑길이었다. 

 

  다행히 그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드넓은 갯벌과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갯벌은 이 지역 사람들이 양식을 하는 곳이라고 써져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체력을 다 써버렸기에 많이 걷진 못했다. 결국 멋진 사진 몇장 뽑은 걸로 만족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주변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는데 ‘버스 알리미’에는 아무것도 떠있지 않았다. 30분 후에 버스 하나가 떴는데 30분 거리에 있다고 알려준다. 현타가 왔다. 그때서야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교통의 불편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야미 안 개구리여서 그런지 여수에서 본 어떤 광경은 꽤 생소하게 다가왔다. 식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난 식당에선 그들을 본 적이 없었다. 국밥집, 갈비집에서도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앞으로 익숙해 질 광경이고 그것이 전혀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인종차별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엔 또 모르겠지만.

 

▲ 어둠이 내린 여수항 포구 (사진=용감한형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 지역도 좋았지만 여수의 일상적인 공간도 좋았다. 아기자기한 골목은  정감을 불러 일으켰다. 어떤 날은 한참을 걷다가 만난 부둣가에서 해가 질 때까지 있었다. 배들이 많이 묶여 있고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고양이가 배에서 걸어나오는 걸 보니 거기서 사는 듯 했다. 해가 떨어질 때 까지 돌멩이를 차고 놀다가 그 유명한 ‘여수밤바다’를 봤다. 오른쪽엔 멀리 대교에 불이 들어와 멋진 광경이었고 왼쪽은 캄캄한 바다와 섬 뿐이었다. 오른쪽에선 유람선이 많은 사람들을 태워 여수 밤바다를 보여주고 있고 왼쪽에선 고깃배가 묶여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차분한 모습과 화려한 모습이 양쪽에서 동시에 펼쳐지니 참 묘했다. 차분하고 어두컴컴하고 일상적인 모습에 더 마음이 끌렸다. 여행 내내.

 

  여수를 떠나며 버스터미널 발권기 앞에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오셔서 무엇인가 부탁하셨다. 사투리 때문에 이해를 못하다가 발권기 터치하는 것을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자기 손이 이래서 터치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 분의 손은 말 그대로 '닳아' 있었다. 손가락 끝부분이 잘려 있었고 손의 형태가 충격적이었다. 그 아저씨가 지시하는 대로 발권기에 터치를 하여 발권을 했다. 천원짜리가 기계에 들어가지가 않아 덜 낡은 천원으로 바꿔 드렸다. 그 아저씨에게 도움을 준 것이 뿌듯하기도 하면서 그 손이 지닌 역사에 대해 계속 상상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숙소로 갈때 버스를 타고 지나치며 본 일. 여수 시청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집회를 하고 있었다. 여천에서 사고가 나 일하던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뉴스가 뇌리를 스쳤다. 몇십여분 전에 본 뉴스였다. 산업재해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했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감정을 느꼈다. 공간적으로 가까이 있기에 이 사건이 주는 슬픔과 충격 또한 더욱 가까이 있는 듯 했다. 안타까웠다. 돌아가신 분들이 하늘에서 편하셨음 한다. 이런 일로 명복을 비는 일이 줄어들어 결국엔 사라지면 좋겠다.

 

▲ 여수시청에서 항의집회하는 노동자들 (사진=용감한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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