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한남정맥의 명산 수리산과 수리사

'군포 역사와 문화 어디까지 가봤어 흥!' 답사

고희정 기자 | 기사입력 2022/04/25 [11:01]

[참관기] 한남정맥의 명산 수리산과 수리사

'군포 역사와 문화 어디까지 가봤어 흥!' 답사

고희정 기자 | 입력 : 2022/04/25 [11:01]

지난 23일, 아침에 게으름을 버리고 막내딸과 조카딸을 데리고 수리산도립공원으로 향했다. 3월에 신청한 ‘군포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어디까지 가봤어. 흥’의 1차 답사를 위해서였다. 아이들과 떠들면서 9시 20분쯤 도착하니 참가자 대부분이 도착해있었다. 9시30분이 돼서 교사팀과 학생팀으로 나뉘어 참가자들과 서로 인사를 나눴다.

 

 한남정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나각순 박사 (사진=고희정)  © 군포시민신문

 

교사팀은 이금순 대표((사)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 대표) 나각순 박사님(전 서울시편찬위 연구관)과 이진복 소장(열린사회연구소 소장)이 학생팀은 백승옥 선생님(역사문화 강사)과 최인화 센터장(군포시 습지센터)이 지도를 맡았다.

 

먼저 이진복 소장이 군포시와 산본의 역사와 지명 유래를 설명해주셨다. 이후 나각순 박사가 한남정맥인 수리산의 지명 유래와 수리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말씀하셨다.

 

군포, 안산, 안양을 품은 수리산은 수리산(修理山) 외에도 수리산(修李山), 견불산(見佛山) 등으로도 불려왔다.

 

산의 모양이 독수리 날개를 펼친 형세라 순우리말로 수리산이라 불렀다는 설, 신라 진흥왕때 창건한 수리사로 인해 수리산이라는 설, 조선시대 때는 어느 왕손이 수도(修道)하여 수리산(修李山)이라고 했다는 설 등이 있다.

 

또 조선후기 ‘동국여지승람’에는 부처님을 보았다하여 견불산(見佛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군포와 수리산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교사팀은 먼저 수리사로 향했다. 수리사로 가는 길은 계단길도 있고 차도 다닐 수 있게 정비가 잘 돼있다. 자연의 흙길을 걷고 싶어하는 사람에겐 조금 실망스러운 길이였다. 하지만 나는 고작 10분정도 걸은 후 계단길 때문에 편히 갈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돌탑 안의 부처님 (사진=고희정)    © 군포시민신문

 

수리사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4월의 계절답게 산의 색깔은 짙은 녹색이 아닌 푸릇푸릇한 연두빛이었다. 봄의 색깔을 만끽하며 20분정도 걸으니 수리사의 일주문과 돌탑이 눈에 보였다. 돌탑 안에는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한 부처님이 앉아계셨다. 부처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표지석을 지나 수리사 안으로 들어섰다.

 

수리사의 첫인상은 시끄러움이었다. 공사 중인 수리사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고즈넉한 느낌과 자연과 어우러진 평안함을 기대했던 나에겐 다소 실망스러운 상황이었다. 공사가 다 끝나면 다시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수리사 구경을 시작했다.

 

 수리사 범종 (사진= 최희영)    © 군포시민신문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종각이었다. 범종을 구경하기 위해 가까이 갔다. 범종에 새겨진 예쁜 문양을 보면서 소리가 궁금해졌다. 공사가 잠시 중단이 됐는지 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웅전 앞에 돌의자에 앉아서 산세를 바라보고 있으니 범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은은한 소리와 함께 마음에 평화가 왔다.

 

수리사에 대해서 나각순 박사님과 이진복 소장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한전 뒤쪽으로 이어진 등산로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군포8경중 하나인 수리사는 1988년 전통사찰 제86호 지정됐으며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이다.

 

1500년전 신라 진흥왕 때 운산(雲山)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최씨 무신정권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켰다는 이야기와 고려명승 관오(觀奧, 1096-1158)가 수리사 주지로 있으면 입적했다고 기록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상당히 큰 사찰로 추정된다고 한다.

 

관오는 고려 예종 때 정2품 좌복야를 지낸 최계방(崔繼芳)의 둘째아들이다. 1107년 예종 2년 12세의 어린 나이에 머리를 깎고 현화사(玄化寺)의 승통(僧統) 상지(尙之)에게 출가했다. 상지는 최계방의 첫째 동생으로 관오의 숙부이다. 13세에 불일사(佛日寺)에서 계를 받았고 1117년 예종 12년에는 봉은사 대선(奉恩寺 大選)에 합격하여 대덕(大德)이 됐고 승계가 수좌(首座)까지 올랐다. 공의(共議)에 따라 1131년 인종 9년 처음으로 월악사(月岳寺) 주지가 됐고, 1137년 인종 15년 천흥사(天興寺), 1146년 인종 24년 법천사(法泉寺), 1154년 의종 8년 수리사의 주지를 역임했다. 선사가 거처한 곳은 모두가 유명한 사찰이었고 승려들은 그를 공경하고 두려워했으며 배우는 사람들은 선사를 흠모하고 따랐다.

 

관오가 주지로 거쳐간 사찰을 볼 때 수리사는 현재의 수리사보다는 훨신 더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혹시 납덕골 일대가 수리사의 본찰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추측을 해보기도 한다. 

   

현재의 수리사는 임진왜란 때 큰 피해를 입어 대부분 파괴됐다가 재건됐지만 6.25전쟁 당시 수리산전투로 주춧돌만 남고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본격적인 복원사업은 1990년 후반부터 시작되는데 나한전, 삼성각, 대웅전, 요사채, 공양전이 차례로 신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됐다.

 

수리산이 6.25 당시 서부전선에서 모락산과 더불어 최고의 격전지 중 하나인 사실에 깜짝 놀랐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불과 한달여 만에 낙동강까지 후퇴하였다가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10월엔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년 1월 4일 후퇴를 시작하여 서울을 다시 뺏긴다. 이후 수리산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뺏고 뺏기는 치열한 백병전을 치루고 마침내 2월 6일 중공군으로부터 고지를 빼앗았다. 이후 전쟁은 38선 근처에 전선을 형성하고 2년을 더 지속하다가 휴전을 한다. 수리산전투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는 아직도 발굴 중이다. 

 

내가 편안히 앉아서 자연을 느끼고 역사를 공부할 수 있게 목숨받쳐 지켜주신 그 분들의 헌신에 다시금 감사드렸다.

 

 부모은중경탑과 편강약수  (사진=최희영)   © 군포시민신문

 

숙연한 마음으로 부모은중경탑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모님의 은혜 열 가지가 적혀있는 탑이다.

 

부모은중경은 부처님이 제자인 아난에게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가르침에 관한 경전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읽고 있는데 이곳으로 학생팀이 선생님과 함께 등장했다. 학생들은 부모은중경의 내용보다는 탑 주위에 올려져 있는 다양하고 작은 불상과 불교용품들에 더 관심을 가졌다. 아이들다운 귀여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수리사를 한 바퀴 더 돌고 수리산의 자연과 수리사에 대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다시 출발장소로 내려왔다. 나는 출발장소에서 다시 수리산을 바라봤다. 수리산은 아침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봄날에 아이들과의 외출은 오늘 날씨만큼 좋은 추억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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