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기 ② 8백만 신의 나라, 4천만 인구의 도시도쿄도청 전망대에서 본 낮의 도쿄 풍경/신주쿠 연어절임구이, 돼지고기 생강구이, 이케부쿠로 커피숍 등2일차인 1월 6일, 아침 6시도 되지 않아 눈을 떴다. 아쉽게도 해 뜨기 전에 숙소를 나서는 것은 실패했다. 1월 무렵 도쿄의 일출은 6시 50분경으로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 가량 빠르다.
계획한 첫 일정은 도쿄 도 도청사(도쿄도청)에 있는 전망대였는데, 숙소와 가깝고 개장 시간이 9시 30분이라 꽤나 여유가 있었다. 숙소 주변을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 보니 길 건너 빌딩 사이로 웬 푸른 기와지붕이 보였다. 호기심이 생겨 가 보았더니, 작은 사찰이 있고 그 옆에는 공동묘지가 조성돼 있었다. 도시 구석구석마다 사원이 있는 일본의 풍경 자체엔 익숙했지만, 번화가 바로 앞에 공동묘지가 있는 모습은 또 새로웠다. 삶의 공간과 바로 맞닿는 곳에서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와 다른 이들의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재미있게도 공동묘지 바로 뒷편에는 술집 거리가 있었다. 걸어가며 간판을 살펴 보니 게이 바와 보이즈 바(남성 종업원과 대화하는 바)가 태반이다. 거리에도 젊은 남자들이 여럿 보인다. 퇴근하는 종업원들이려니 싶다. SNS에서 친구에게 이 광경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묘지의 음기를 남자의 양기로 누르는 거 아냐?" 피식 웃고는 도쿄도청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숙소가 있는 신주쿠산초메에서 도쿄 도청으로 가려면 고가도로를 따라 신주쿠역을 넘어가야 한다. 가던 길에 배가 고파 이른 시간에도 여는 메밀국수집이 있는지 찾다가 대신 뜻밖의 정식집을 발견했다. 연중무휴에 아침 7시부터 영업한다는 것을 보아 이 주변에 많은 직장인들의 아침을 책임지는 가게이리라 짐작한다.
들어가자마자 키오스크에서 막혔다. 일본에서 정식이나 라멘, 덮밥 등 일품을 다루는 식당은 보통 입구의 키오스크에서 식권을 구매하고 그것을 직원에게 내는 방식인데, 이곳은 키오스크에 메뉴가 없고 QR코드를 찍는 카메라만 달려 있었다.
의아해하며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던 주문용 태블릿과 함께, 좌석번호가 적힌 QR코드 쪽지가 비치돼 있었다. 먼저 자리에 앉아 주문해 식사부터 하고, 계산은 나갈 때 키오스크에 QR코드를 인증해 이뤄지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2022년에야 관공서에서 플로피 디스크를 퇴출하기 시작한 '낡은 나라' 일본이라지만, 수요가 있는 분야에선 충분히 발전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문한 메뉴는 연어 사이쿄즈케야키(サーモン西京漬け焼き) 정식이다. '사이쿄즈케(西京漬け)'란 서경, 즉 교토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선을 쌀된장(시로미소)과 미림 등에 절여 맛과 보관성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라고 한다. 먹어 보니 생선절임을 구운 것임에도 짜거나 풍미가 강하지 않고 감칠맛만 은근히 배어든 느낌이었다. 평소 별로 짜게 먹지 않는 편임에도 간장을 따로 뿌려 먹었을 정도였다. 함께 나온 유부 된장국도 맛이 적당해 편안했다. 그래도 한국인에겐 너무 허전한 반찬 구성인지라, 사진엔 없지만 나중에 네기토로(다진 참치회)와 무우엉절임도 추가로 주문했다. 두 반찬 모두 따로 돈을 내 시킨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맛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번화가를 지나쳐 도쿄도청으로 향했다. 도쿄도청은 관공서로서는 이례적으로 243미터에 달하는 높이의 마천루를 가져, 1991년 완공 당시엔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도쿄를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산다'던 일본 버블 시대 말기에 지어진 탓이라고 한다. 살인적인 땅값을 내고 부지를 넓힐 바에야 그 돈으로 건물을 높게 쌓아올려 사무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도쿄도청 전망대는 무료 개방이다. 북측·남측의 두 타워가 쌍둥이처럼 서 있는데, 2023년 1월 현재 북측 타워는 백신접종센터로 쓰이고 있어 출입할 수 없다. 도청 홈페이지 스케줄표에 따르면 최소한 3월까지는 폐쇄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매주 첫째, 셋째 평일 화요일에는 남측 타워도 정기 휴무로 문을 닫으니 여행 중 방문할 사람들은 홈페이지나 공식 트위터 등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내부는 사방의 벽이 트인 구조가 아니라서 전망대 다운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대신 보통의 전망대와 달리 공간의 가운데가 비어 있다는 장점은 있었다. 누구든 자유로이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도 놓여 있었다. 북측 타워에 가로막힌 쪽을 제외하면 도쿄 전체를 둘러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도쿄도의 인구는 약 1,400만 명, 주변 현을 포함한 수도권 인구는 약 4,400만 명이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에 버금가는 숫자가 이 전경에 기대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면서, '우리도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조금이나마 느끼는 순간이었다.
메뉴를 보니 메인 요리에 튀김류 하나를 끼워 주는 세트가 있었다. 돼지고기 생강 구이와 게살 고로케를 시켰다. 고기는 크기도 큼직하고 생강 맛이 부담스럽지 않게 스며 있었다. 게살 고로케는 다소 느끼할 정도로 크리미해서 가게에 비치된 레몬즙과 소스를 끼얹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도쿄 북서쪽의 번화가인 이케부쿠로로 향했다. 역 밖으로 나오니 'BIG ISSUE' 잡지 판매원이 있었는데, 잡지 표지에 배우 이정재의 얼굴이 있어 흠칫 놀랐다.
이케부쿠로에 대해서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이전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어 호기심으로 들른 것인데, 각종 체험 공간이나 쇼핑 시설 등 즐길 곳이 많은 도시였지만 혼자서 할 만한 건 별로 없었다. 역 앞에서 옛날식 커피숍을 발견해, 세이부 백화점의 전경을 창밖으로 감상하며 차를 마셨다. 다음엔 친구나 애인과 함께 와야겠다고 속으로 기약하곤 떠났다.
첫날 결심했던 대로 정말 '하루를 이틀처럼' 길게 보내 버린 탓에, 이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여행기로 넘긴다. 마침 이날 오후에는 7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주류 판매점에 들렀고, 이어서 3일차인 7일에는 긴자와 우에노라는 상반된 분위기의 두 동네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다음 편은 술 특집이 될 것 같다. <저작권자 ⓒ 군포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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