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발상지' 시모노세키 일본인 "조선인이라 말 못하는 현실 여전"

'변화를 일궈온 이방인' 도쿄 재일교포 2세 최승구 선생 <2023 동유라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평화여행> ④

전주호 기자 | 기사입력 2023/03/29 [23:16]

'재일교포 발상지' 시모노세키 일본인 "조선인이라 말 못하는 현실 여전"

'변화를 일궈온 이방인' 도쿄 재일교포 2세 최승구 선생 <2023 동유라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평화여행> ④

전주호 기자 | 입력 : 2023/03/29 [23:16]

한일반핵평화연대와 아시아평화시민넷이 '2023 동유라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평화여행'이라는 제목으로 2월 28일부터 3월 7일까지 7박 8일간 일본에 방문했다. 니이가타에서 시작해 도쿄,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고쿠라, 세모노세키,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거치며 각지에서 평화교류와 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방문 중 있었던 주요 사항을 일본 현지 주민, 재일교포 등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전한다.

 

▲ 한일반핵평화연대와 아시아평화시민넷이 '2023 동유라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평화여행'을 통해 니이가타, 도쿄,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고쿠라, 세모노세키,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방문했다. 여정의 이해를 돕기 위한 지도. (자료=구글 어스) 


 

"재일조선인들은 지금도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히기 어렵다. 일본사회의 심한 '동조 압력'과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다"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일본과 코리아를 연결하는 모임·시모노세키' 대표는 평생 조선인임을 숨겼던 일본 '레슬링 영웅' 역도산의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재일교포가 아닌 일본인이지만 재일교포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수십 년째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3월 5일 방문한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는 일본 본토인 혼슈 가장 끝에서 규슈 섬과 마주보는 항구 도시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통신사부터 일제시대 부관연락선, 현대의 부관훼리까지 한반도와의 교류가 이어져 오는 곳이기도 하다. 하관(下関), 즉 아래 관문이라는 뜻의 시모노세키는 식민지 조선에서 살길을 찾아, 혹은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동포들이 발을 디디는 첫 관문이었다. 일본측에서 준비한 안내 책자의 제목 또한 '재일동포의 발상지 시모노세키'였다.

 

▲ 한국 방문단이 2023년 3월 5일 구와노 야스오(鍬野保雄) '일본과 코리아를 연결하는 모임·시모노세키' 대표에게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처음으로 안내받은 곳은 현재 야마구치현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인학교인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였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여파로 1928년 지어진 재일조선인 지원시설 '구 쇼와칸(昭和館)'을 모태로 하는 이 학교는 1946년 '조련시모노세키초등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된 이래 수십 년간 민족교육 탄압, 일본의 지원중단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2022년에는 교내 에어컨 설치를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 목표액을 웃도는 한화 약 2억 원을 모금해 체육관까지 새로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 구와노 대표가 2023년 3월 5일 한국 방문단에게 시모노세키 조선인 마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학교 주변 간다초(神田町) 일대는 조선인 마을이다. 옛 지명은 넓은 언덕을 뜻하는 '오오츠보(大坪)'였는데 형무소, 화장터, 결핵병원 등 기피시설이 많아 사람이 잘 살지 않던 이곳에 조선인들이 모여들어 마을이 이뤄졌다. 마을길 경사를 따라 오수가 흘러 고이는 탓에 조선말로 '똥굴 동네'라고 불렸다고 한다. 구와노 씨는 "어릴 적부터 시모노세키에 살았는데 학교 교사가 (일본인) 학생들에게 '오오츠보엔 가지 마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가 이 마을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돼 사회운동을 하면서 재일조선인 문제와 접한 뒤라고 했다.

 

오오츠보의 화장터에서는 형무소에서 죽어간 무연고 사망자를 많이 태웠는데, 고향을 떠나 일본에 연고가 없는 재일교포가 많았다고 한다. 그들을 기리는 비석이 구 화장터 자리의 공원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진 상태다.

 

▲ 시모노세키의 한국식 사찰 광명사 '평화의 대범종각.' 2023년 3월 6일 촬영.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학교 옆에는 '광명사(光明寺, 일본명 고묘지)'라는 한국식 절이 있다. 조선인이 강제동원됐던 후쿠오카현 지쿠호 탄광의 한국식 절이 1948년 귀국하며 유족 불명 유골을 시모노세키에 맡긴 것이 절의 시초라고 한다. 지금은 마지막 주지가 사망한 이후 이어받을 스님이 없어 문을 닫은 상태로, 외부의 기록비와 종각 정도만 살펴볼 수 있다.

 

출입할 수 없는 내부에는 역도산의 벚나무 목조상이 있다고 한다. 많은 조선인들처럼 역도산도 관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를 통해 일본에 건너 왔다. 본명은 '김신락(金信洛)'이었지만 생전에는 '모모타 미쓰히로(百田光浩)'라는 일본인으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었다. 구와노 대표는 "재일조선인들은 역도산처럼 조선인임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일본사회의 '동조 압력'이 얼마나 심하고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지 보여준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 시모노세키 카이쿄유메 광장에 위치한 '준철도기념물 칸부·간몬해협 시모노세키철도잔교터(準鉄道記念物 関釜·関門航路 下関鉄道さん橋跡)의 부조 벽화(위)와 기록비. 관부연락선과 관문연락선을 일본 철도와 바로 잇는 철도역 겸 선착장이 있던 자리다.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시모노세키역 인근 가이쿄(해협)유메 광장에는 '칸푸(관부/부관)연락선터'가 있다. 관부연락선이란 이름은 시모노세키(하관)와 부산에서 한 글자씩을 딴 것으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전한 기념으로 1905년 9월 개설한 이래 제국 일본과 대륙 간의 다리 역할을 하며 승승장구했으나 1945년 패전을 전후해 영업이 중지됐다. 지금은 광장의 터와 비석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뱃길이 갑자기 끊기자 시모노세키의 조선인들은 규슈의 후쿠오카나 야마구치현 북부 센자키(仙崎)까지 이동해 조국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전한다.

▲ 시모노세키 간몬 철도 터널 공사 순직자비. 조선인 5명 포함 19명의 순직자가 기록돼 있다. 선로 안에 있어 160cm 정도의 담벼락보다 높게 서지 않으면 멀리서조차 확인이 어렵다.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시모노세키는 맞은편 규슈의 모지(門司)항과 연결되는 간몬(관문)연락선을 통해 군함도를 비롯한 규슈 각곳의 광산으로 강제징용 인력을 보내는 창구이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해저 터널이라는 '간몬 철도 터널' 또한 1942년(하행)과 1944년(상행) 개통돼 인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군사 터널 역할을 했다. 

 

터널의 시모노세키측 입구에는 공사 중 사고로 숨진 사람들이 적힌 순직비가 서 있으나 선로 안에 있어 외부인이 확인하기 극히 어렵다. 비석에는 '이적금, 조용동, 손위경, 신성윤' 등 4명과 창씨개명으로 추정되는 '아라이 운규' 포함 5명의 조선인 희생자가 기록돼 있으나, 실제 강제노역 등으로 터널 공사에 동원된 조선인과 그 희생자 수는 당시 군사기밀에 붙여져 현재까지 불명이다.

 

▲ 후쿠우라 조선우 검역소터. 지역 초등학교 교사가 지역 역사 교육의 일환으로 초등학생에게 검역소에 대해 설명하는 팻말을 그리게 한 것이 눈에 띈다.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방문단은 이밖에도 1904년부터 1943년에 걸쳐 조선 소 130만 마리를 수입, 검역한 '후쿠우라 검역소터,' 청일전쟁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 조약이 채결된 '일청강화기념관,' 김종필의 친필이 새겨진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 등을 돌아봤다.

 

전체 안내는 구와노 대표와 재일교포 2세 가네야마 사부로(金山三郎) 씨가 맡았다.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구와노 대표는 한국 방문단을 위해 책자까지 만들어 시모노세키 주요 장소를 상세히 안내했다. 가네야마 씨는 구와노 대표와 달리 한국말을 일절 하지 못했다. 원래 성은 김(金)씨라고 한다. 가네야마 씨는 시모노세키시가 용인한 불법 건축물에서 발생한 건설 폐기물이 본인 소유 토지에 무단투기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몇 년째 시 행정을 상대로 투쟁을 이어 오고 있다. 올해로 75세인 그는 "구와노 대표와 많은 분들을 만나며 칠순이 넘은 이제서야 사회와 역사에 눈이 트였다"며 "바쁜 일이 끝나면 꼭 한국어를 공부하겠다"는 열의를 보였다.

 

▲ 재일교포 2세 최승구 선생과 그의 책 《변화를 일궈온 이방인 : 한 자이니치 인권운동가의 저항 전기》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이에 앞서 3월 1일과 2일 방문단은 도쿄에서 재일교포 2세 최승구 선생을 만났다. 일본기업 히타치의 조선인 취업차별에 대한 투쟁을 시작으로 재일교포 인권운동과 평화운동에 발을 들인 그는 현재 운동의 영역을 반핵으로 확장, 한일반핵평화연대 사무국장으로 한국과 교류하고 있다. 2020년에는 《변화를 일궈온 이방인 : 한 자이니치 인권운동가의 저항 전기》를 한국에 출간하기도 했다.

 

1일 모임에서는 주로 선생의 인생 족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945년 '해방둥이'인 선생은 황해도에서 도일한 부친과 재일교포 2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조선인 정체성에 열등감을 가지고 숨기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 자랐다고 고백했다. 이로 인해 한국어도 할 줄 몰랐던 선생은 가와사키의 한인교회에 다니게 된 것을 계기로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한국 유학을 통해 언어와 역사를 배운 선생은 '열등감은 역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 재일교포의 역사나 어려움이 잘 알려지지 않아 막연히 '잘산다'고 생각하는 현실과, 학교에서도 역사를 잘 가르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 일본의 실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선생은 역도산과 관련된 일화도 들려 줬다. 역도산은 복싱클럽의 오너였던 선생의 부친과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된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선생의 모친이 운영했던 식당의 단골이기도 했다고 한다.

 

▲ 한일반핵평화연대와 아시아평화시민넷이 2023년 3월 2일 도쿄 '호텔 먼데이 아사쿠사'에서 최승구 선생을 비롯한 일본 활동가들과 만남을 가졌다. (사진=전주호)  © 군포시민신문

 

2일에는 하가 히로코(芳賀普子) 한일반핵평화연대 이사와 2월 28일 니이가타에서 만났던 와타나베 히데아키 사회민주당 니이가타현연합 간사장도 참석한 가운데 일본의 원전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신냉전과 경제위기 등을 주제로 한일 참가자들의 토의가 이어졌다.

 

와타나베 간사장은 "일본은 시민의 힘이 약하다"고 자평하고 "2월 26일 오키나와에서 1600명 규모의 반전 시위가 있었다. 야마토(본토) 지역에서도 힘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자인 이승무 한일반핵평화연대 한국측 대표는 "평화를 깨트리는 건 현재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라 지적하고 대안적 경제시스템을 마련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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