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린 11월 17일 금요일 아침 8시, 군포시청을 출발한 40여 명의 버스 나들이객이 오두산통일전망대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9시 반경, 그 전에 자유로휴게소에서 탑승한 파주 현지의 생태운동가 조영권 선생의 안내로 임진강을 따라 파주 연천 일대의 오두산통일전망대-장산전망대-호로고루성-숭의전을 둘러보는 하루 일정의 탐방이 시작되었다.
오두산통일전망대 / 파주 탄현면 필승로 369 이곳은 오두산 정상을 620m나 둘러싼 오두산성(烏頭山城)이 있던 곳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편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나오는 관미성(關彌城)이 바로 이곳이라는 주장이 있다. 성 이름의 關 자가 ‘빗장을 걸다’라는 뜻이어서 삼국시대 이곳이 신라·백제·고구려 간의 뺏고 빼앗기는 공성(攻城)지였음이 가늠된다. 현재 이곳 정상은 ‘통일 교육의 전당’으로 꾸며져 있다. 개관시간(오전 10시)이 좀 일러 바깥을 둘러보니 가까이 임진강과 그 너머 북녘 개풍 땅을 등지고 조만식 선생 동상이 세워져 있다. 민족주의자였던 선생은 일제강점기 내내 민족 교육에 헌신하다 해방 후에는 신탁통치를 반대, 김일성에 의해 희생된 분이다. 그 옆으로는 실향민들을 위한 망배단과 통일염원비가 세워져 있다. 개관시간에 맞춰 실내로 들어서니 1층 기획·상설 전시장, 2층 그리운 고향 전시와 극장, 3층 300석의 시청각실과 야외전망대, 4층 옥상 전망 라운지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우리 일행은 4층 옥상에서 XR망원경을 통해 강 너머 개풍 마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가옥 쪽은 한적했으나 전답 쪽엔 간간이 사람들의 발길이 오간다. 농한기에 들기 전의 마무리 일들이 남아서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임진강 쪽으로 시선을 줄 때마다 한강과 임진강 교하(交河) 물줄기의 남북 사이로 남은 김포, 북은 개풍으로 갈라진 낯선 풍경이 그려진다는 점이다. 이곳 토박이인 조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할머니의 말씀에 썰물 때엔 걸어서 강을 건너기도 했고 한겨울엔 언 강을 타고 건너기도 했으며 강추위가 풀릴 때면 밭뙈기만 한 커다란 유빙들이 서로 부딪치며 쩌렁쩌렁 울음을 울기도 했다 한다. 나는 3층 시청각실에서 이북5도민을 위한 고향마을 영상을 보며 순식간에 평양의 을밀대와 동명왕릉, 흥남부두, 함흥, 청진 일대 등을 타임머신을 타고 순식간에 둘러보았다. 을밀대가 순우리말 ‘웃밀이언덕’이 이두로 음차된 것임을 알게 되었으나, 돌아와 검색해 보니 을밀선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내려와 놀던 곳, 또는 6세기 평양성을 세울 때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 을밀 장군이 이곳을 지키며 싸운 곳이라는 설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1층에 전시된 서울-평양-파리행 KTX 모형열차를 사진에 담으며 문득 ‘아, 가고 싶다. 개마고원!’을 읊조리게 된다. 언제부턴가 나는 통일되었을 때 가장 먼저 개마고원에 올라 옛 고구려의 기상을 품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잠시 살아생전에 그 꿈이 꼭 이뤄지길 빌어보았다. 오전 10시 반이 넘자 외국인 단체관광객들이 꽤 많이 입장한다. 일본어와 중국어가 뒤섞여 해설사들의 설명이 뒤따른다. 저들에게 평화니 분단이니 통일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실감이 갈까.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갈려진 현실이 얼마나 비현실로 다가올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11시경 버스는 다음 행선지로 내달렸다.
장산 전망대 / 파주 문산읍 장산리 산21-3 오두산 통일전망대와는 달리 이곳은 인공적인 전망시설이 전혀 없는 넓은 산 언덕이다. 바로 앞 임진강에 둘러싸인 섬 초평도(草坪島)와 그 너머 남북 땅을 조망할 수 있는 사진과 설명 간판만 세워져 있을 뿐이다. 이곳은 ‘평화누리길’의 숨은 명소로서, 확 트인 언덕에서 장군봉-천덕산-덕물산-진봉산-도라산-통일대교-개성공단-개성시 외곽-송악산-기정동마을-대성동마을-극락봉-덕진산성-백학산-마식령 산맥줄기-해마루촌 등 DMZ 민통선 일대를 한눈에 두루두루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자연 전망대이다. 정신없이 사방팔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무리 기러기 떼가 V자를 그리며 상공을 날고 있다. 흐렸던 날씨도 잠시 개어 창공을 나는 기러기의 군무를 보니 ‘평화가 우리 눈에 광명처럼 비치는구나’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민통선 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조 선생은 “농사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지뢰”라며 “미군들이 어린애 주먹만한 발목 제거 지뢰를 DMZ 내에 무한정 공중살포한 바람에 빗물과 강물에 쓸려다니며 공공연한 살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군 당국에서 제거하면 되지 않냐”고 묻자, “지뢰 제거기가 오히려 번번이 지뢰에 당하고 있어서, 제대로 제거하는 데만도 400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된다”고 답한다. 조 선생 자신도 죽음을 각오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고 쓴 미소를 지어 보인다. 분단이 빚은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두부요리전문점 <장단콩맛집> / 031.954.3314 인근 장단콩맛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버스를 길가에 세우고 5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나오는 두부요리전문점이다. 허름한 양철지붕에 40석밖에 없는 다소 외진 식당이지만 대단한 맛집이었다. 메뉴는 두부전골 밖에 없고 보리새우, 양송이버섯에 소금 간으로만 맛을 내는 데도 고소한 두부 맛이 배어든 국물 맛이 깔끔하면서도 개운하다. 막걸리 2병을 별도로 시켜 같은 테이블 일행들과 술로 인사를 나누었다. 황해도 장단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콩의 원산지 중 한 곳으로 임진강 너머 북쪽에 위치해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다. 다만 강 남쪽 지역에서 짓는 콩도 그 명성에 못지않아 ‘장단콩’이라는 브랜드로 유통되고 있다.
호로고루(瓠盧古壘) / 연천군 연천읍 연천로2486 임진강은 오래전 ‘호로하(瓠濾河)’라고 불렸는데, 이곳은 ‘낡은 성채’라는 뜻의 고루(古壘)를 붙여 지어진 고구려성 명칭이다. 임진강 일대는 원래 백제가 세력권을 넓게 형성했던 지역이나 396년 광개토왕이 남하 정책을 펼쳐 고구려 영토가 되었고, 이곳을 기반으로 475년에는 백제 수도 한성까지 점령한 바 있다. 이곳은 임진강 북변 주상절리로 깎아지른 절벽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로 기병을 앞세웠던 고구려 군대가 드나듦이 좋도록 삼각형 모양으로 세운 토성이라서 신라 백제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를 갖는다. 당시 한성의 아차산에서 신라·백제 연합군에 밀려 퇴각한 고구려군은 임진강 북녘을 따라 호로고루 외에 당포성, 덕진산성 등으로 방어선을 구축했고, 임진강 남녘을 따라 백제·신라는 오두산성, 봉서산성, 이잔미성, 대전리산성 등 여러 성을 쌓아 대치했으므로 오늘날로 보면 ‘삼국시대의 DMZ’가 구축되었던 것이다. 나·당 연합군을 결성했던 당나라군에 의해 평양성을 잃었던 고구려 부흥군이 이곳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끝까지 항전했던 곳이다. 당군은 결국 호로고루를 점령, 호로하를 교두보 삼아 강 남쪽 신라의 칠중성을 치는 데 실패, 오히려 강 초입의 조강으로 밀려든 20만 당 대군을 신라군이 궤멸시킴으로써 통일신라 시대의 문을 열게 된 곳이다. 호로고루 바로 아래쪽 고랑포는 강폭이 좁고 깊이가 얕아 한국동란 때에는 중공군이 걸어서 남하한 곳이기도 하고,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는 내륙 한탄강과 임진강 상류까지 배가 드나들며 교역이 왕성했던 출입로이기도 했다. 조 선생의 말에 의하면, “한강·임진강·예성강 하류의 서해 물길이 막히지 않은 결과”라고 단언한다. 세 강의 중·하류는 남북이 정전협상에 의해 2km씩 DMZ 개발금지구역을 둔 덕분에 한반도에서 가장 최상의 자연천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남북통일이 되더라도 꼭 그대로 보존시켜야 할 곳들이다.
숭의전(崇義殿) / 연천군 연천읍 연천로 220 마지막 방문지인 숭의전은 원래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 앙암사(仰巖寺)가 있던 곳으로, 1397년(태조 6)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건립했다. 조선조로 넘어오면서 1399년(조선 정종 1) 왕명에 따라 고려 8왕 위패를 봉안했다가 1425년(조선 세종 7)에는 태조 현종 문종 원종 4왕만을 봉향하도록 했다. 1451년(문종 1) 전대 왕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4왕 외에 고려조 충신 16명을 함께 배향하도록 했다. 고려 충신 16인 중에는 고려 개국공신인 우리 집안(평산 신씨)의 시조 신숭겸 장군이 포함되어 있어 몇 해 전에도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이날도 그의 위패가 모셔진 배신청(陪臣廳)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이날은 숭의전 뒤편의 잠두봉에도 올라가 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물 위로 햇살이 웅숭깊다. 이곳은 유독 여러 설화가 많이 전해 오는데, 예를 들면 ➀6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보호수 2그루_조선 문종 2년에 왕건의 자손이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나무가 철 따라 웅~웅~ 소리를 내며 울면 눈이 많이 오고,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며, 까마귀가 모여들면 틀림없이 초상이 난다고 한다 ➁잠두봉(蠶頭峯)과 썩은소_숭의전 뒤쪽의 봉우리 이름이 누에고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잠두봉이다. 고려 멸망 때 충신들이 망국의 한을 달랜 곳이라고 한다. 그 적벽 주위를 가리켜 썩은 쇠가 '썩은소'로 바뀌어 명명되고 있다. 이곳 임진강변에 있는 소(沼)인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등극하면서 고려 왕족인 개성 왕씨를 멸족시키려 했다. 왕씨들은 성을 바꿔서라도 목숨을 이어가고자, 田,全·金·玉·琴·朴 등으로 성을 바꿔 피신했다. 그중 왕씨 몇 사람이 모여 의논하기를, “우리가 모두 이렇게 성을 바꾸더라도 조상님은 한 분이니 왕건 태조의 신주는 안전한 곳에 머물도록 해드립시다”하여, 송도에 안치된 왕건의 신위를 돌배에 모신 후 예성강에 띄웠다. 그 돌배는 임진강 합류 지점에 도달하여 임진강을 역류해 황해도 안악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지금의 미산면 동이리 임진강 어느 벼랑 밑에 멈춘 후 움직이지 않았다. 돌배에 타고 있던 왕씨 몇 사람이 이곳을 피신 장소로 정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배에서 내리면서 쇠로 만든 닻줄을 매어 놓고 사당을 지을 명소를 물색한 후 강가에 나가 보니, 하룻밤 새 쇠닻줄이 썩어 끊어지고 돌배는 온데간데 흔적이 없었다. 급히 하류 쪽으로 가서 찾아보니 4㎞쯤 떨어진 곳의 잠두 절벽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에 절벽 위에 사당을 지어 태조 왕건의 신위를 모시고 ‘숭의전’이라고 이름짓기로 했다 한다. 다소 장황하게 두 번째 설화를 소개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리라는 판단에서다. 500년 고려 왕조가 그리 쉽게 스러질 순 없지 않은가. 1789년(정조 13) 숭의전 수리공사를 마친 뒤 마전군수 한문홍도 잠두봉 절벽에 이런 한시를 새겼다. 시제는 ‘重作崇義殿(숭의전을 고쳐 짓고)’이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의 36대손으로서 고려 왕조의 흥망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오후 4시경 발길을 돌렸다.
麗組祠宮四百秋 숭의전을 지은 지가 4백 년이 되었는데 誰敎木石更新修 누구에게 목석으로 새로 수리하게 하는고 江山豈識興亡恨 강산이 어찌 흥망의 한을 알리요 依舊蠶頭出碧流 의구한 잠두봉은 푸른 강물 위에 떠있구나 往歲傷心滿月秋 지난 세월 만월추에 마음 슬퍼하였거늘 如今爲郡廟宮修 지금은 이 고을 군수가 되어 묘궁을 수리했네 聖朝更乞麗生石 조선은 생석을 갖추어 고려왕들을 제사토록 했으니 留與澄波萬古流 아마도 숭의전은 징파와 더불어 길이 이어지리라 - 시 속 징파(澄波)는 임진강의 당시 별칭이다 -
되돌아오는 길은 러시아워에 걸려 무려 3시간 이상 길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잠시 잠깐 눈을 붙일 때마다 감은 눈에 떠오르는 임진강의 잔물결과 그 위를 비추던 햇살의 잔영이 내 뇌리를 스친다. 상스러운 첫눈이 군포 시내에 휘날렸다지만, 우리 일행에겐 아름다운 우리 강산의 숨결을 느껴본 하루였다. 조 선생은 설명 도중 “저는 땅을 흙으로만 봅니다. 경제적 가치로 따져지는 땅의 의미보다, 생태적 가치로 여겨지는 흙의 의미는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흙의 가치를 존중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사람들의 삶이 제한당하는 DMZ는 또 다른 생명체가 살아가는 보호구역임을 실감해본 매우 의미 있는 기행이었다. 행사를 마련해준 군포시 민주시민교육센터(센터장 강선영)와 위탁기관인 시민교육이음, 그리고 온종일 현장 설명을 해주신 조영권 선생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날 버스 좌석의 짝꿍이 되어 하루종일 말동무가 되어준 박병윤 님과의 재회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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