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역사기행기-2일차 랴오양/선양

동네 형님 두 분과 떠난 여행

신완섭 기자 | 기사입력 2024/11/05 [08:05]

2024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역사기행기-2일차 랴오양/선양

동네 형님 두 분과 떠난 여행

신완섭 기자 | 입력 : 2024/11/05 [08:05]

  동네 형님 두 분과 아래의 일정으로 4박 5일간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遼寧省) 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성도이자 제1의 도시인 선양시를 시작으로 랴오닝성 제2의 도시인 다롄시 및 뤼순커우구에서 마무리했던 닷새간의 여행을 일정 순으로 기록해 본다.

 

  일정: 10/11~12 선양(瀋陽)/랴오양(遼陽) - 10/13 퉁화(通化)/지안(集安)/환런(桓仁) - 

        10/14 단둥(丹東)/다롄(大連) - 10/15 뤼순커우구(旅順口區)


 

  2일차(10/12, 토) 랴오양/선양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선양역 일대까지 산책을 다녀왔다. 광장으로 들어서는 길가에서 장마당이 열리고 있다. 웬만한 베개 크기의 대형 빵 2개를 15위안(=한화 3천원)에 팔고 있다. 밀가루값도 안 될 정도다. 시내버스 요금이 2~3위안, 택시 기본요금이 9 내지 10위안에 불과하다. 대략 우리나라 물가의 1/3 수준이다. 심지어 이날 아침 호텔 부대 식당의 조식 값이 15위안이었다. 약식뷔페 차림으로 만두, 쌀죽, 삶은 달걀에 기본 반찬이 5종, 거기다 요구르트와 주스, 커피까지 준비되어 있었으니 닷새간의 현지식사 중 최고의 가성비라고 엄지척했다. 여행 내내 먹은 중국요리 평균가격이 20위안(=4천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2천원대 반찬포함 식사가 4천원대 반찬별도 요리보다 나았다는 점이다. 문제는 대개의 요리가 기름지고 특유의 향신료 탓에 항상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긴다는 점이다.

 

▲ 선양역 대합실 전동마사지 코너 (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모처럼 식사다운 식사를 끝낸 우리는 선양역으로 달려가 서남쪽으로 60km 떨어진 인구 200만가량의 랴오양시로 가기 위해 개찰구를 들어섰다. 그러기 전에 잠시 대기시간을 이용해 개찰구 내 대기공간에서 의자에 누워 전동 마시지를 20분가량 받았다(1인당 20위안). 첫날 강행군에 이은 둘째 날의 체력 관리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오전 9시 반경에 도착한 랴오양은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부의 중심지로서 요·금 때 건립된 높이 71m의 8각 13층 ‘백탑(白塔, 하얀 전탑)’이 1988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쓴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도 열하와 북경으로 가던 도중 요동을 거치면서 잠시 머무르며 이 탑을 보고 갔다고 한다. 인근에는 2004년 복원시킨 광우사(广祐寺)가 있으며 그밖에도 한나라 대의 묘지, 청나라 대의 동경성과 동경릉, 백암성 등이 남아있다. 1시간 반 정도 체류하는 사이 L 사장은 짐볼로 동영상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덩달아 남은 우리도 바빠진다. 근처 위락시설에선 아이들이 놀이시설을 타느라, 어른들은 춤추느라, 우리는 백탑과 광우사를 오가느라 정신이 없다. 

 

▲ 랴오양시 백탑 앞 불교선원 '광우사' (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광우사’는 한나라 때 창건되어 이후 동북지역의 불교 활동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청나라 때 훼손된 것을 2002년 1월부터 재건공정이 시작되어 2년 반의 공사 끝에 복원되었으며 부지면적이 6만 평방미터로서 백탑 바로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대웅보전은 중국에서 제일 높은 대웅보전으로 높이는 41.7m, 건축면적은 1만여 평방미터이다. 그 속의 불상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불상으로 높이가 21.48m인데, '21'은 21세기를, '48'은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무로 만들어 24k 순금을 입혔는데, 향장목이 무려 600입방미터, 금이 무려 24kg이나 사용되었다. 복원 규모도 역시 대국답다. 

 

  정오경 선양역으로 돌아와 간단히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청 태종 홍타이치의 무덤인 ‘북릉(北陵)공원’을 찾아갔다. 1927년 공원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1982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공원의 면적은 330ha로 베이징 이외의 지역에 조성된 청나라 관외삼릉(關外三陵)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소나무숲을 좌우로 해 전각을 지나면 청 태종의 봉분이 나타나는데 봉분 위에 비술나무(느릅나무과 낙엽활엽수)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 건원릉 봉분에 태조 이성계가 고향을 그리워해 ‘갈대를 심으라’는 유언을 남긴 이래로 지금껏 잘 자라고 있는 것처럼, 북릉 봉분 위의 비술나무도 청 태종의 유언에 의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진짜 이유는 봉분 위 나무로 천지간의 기(氣)를 이어주기 위함이라 한다. 멀리서 보면 작은 동산 위에 비술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청 태종 홍타이지 동상 (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청 태종의 능으로 시작해 공원으로 발전된 이곳은 규모가 크고 문화유물도 많은 곳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자 도심 속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이날 처음으로 우리 말을 하는 노인네 두 분을 뵙고 반가워서 인사를 드렸더니 선양 서남쪽 일대에 몰려 사는 조선족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한국에 다녀온 적도 있고 아들이 한국 유학하면서 사귄 한국 며느리를 맞이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고 보니 이틀째 외국인 관광객, 특히 서양인들과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리나라 고궁을 가보면 최소 절반 이상이 외국인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북릉을 나오자마자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청 태조 누르하치 묘인 ‘복릉(福陵, 별칭 東陵)’으로 향했다. 선양시 동북쪽으로 11㎞ 떨어진 언덕에 있는 청 태조 누르하치와 황후 예허나라씨의 능이다. 후금이 청을 세우기 전인 1629년에 건립되었고, 강희제와 건륭제 때 증축 및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산하이관(山海關) 동쪽 또는 자위관(嘉峪關) 서쪽 일대를 가리키는 관외에 자리한 청나라 3개 능묘 가운데 하나로서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1996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부지면적 194,800㎡이며, 앞으로는 훈허(渾河)와 인접하고 북으로는 톈주산(天柱山)에 기대어 있다. 건물 구도가 치밀하고 세련되었으며, 능원(陵園)과 성루(城樓) 건축을 교묘하게 결합한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직사각형 담벽이 둘러싸고 있으며, 내부는 전원(前院)·방성(方城)·보성보정(寶城寶頂)의 3부분으로 나뉜다. 앞에는 집무실인 정전을, 뒤에는 침전을 배치했다. 남쪽 중앙에 정홍문(正紅門)이 있고, 그 앞에 석패방(石牌坊)·하마비(下馬碑)·화표(華表)와 석조 사자가 있다. 문 뒤편 묘소로 통하는 길 양쪽에는 사자·말·호랑이·낙타 등의 석상이 쌍으로 배열되어 있다. 전원의 주요 건물인 비루에는 강희제의 친필을 새긴 〈대청복릉신공성덕비(大淸福陵神功聖德碑)〉가 세워져 있다. 중심 건물인 방성은 성루 형태의 건축물로서 앞에는 융은문(隆恩門), 위에는 3층의 문루가 있다. 방성 안에는 〈태조고황제지릉(太祖高皇帝之陵)〉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네 모서리에는 각루를 설치, 한가운데는 위패를 봉안한 융은전(隆恩殿)이 있다. 그 앞에는 분백정(焚帛亭), 뒤에는 석조 기둥과 5종의 석조 제기(祭器)가 있으며 뒷부분에 자리한 보성보정 밑에는 지하궁전이 있다. 왕릉의 구조는 앞서 보고 온 북릉과 동일하다. 공원화되어 엄숙함이 덜한 북릉과 달리 복릉으로 올라가는 일백단팔등(一百單八磴, 108-step Dtaiway)에서부터 이미 청 태조의 권위가 느껴진다. 

 

▲ 청 태조 누르하치 왕릉 (사진=신완섭)     ©군포시민신문

 

  퇴장 마감 시간을 넘긴 저녁 6시 무렵 정문인 정홍문을 빠져나왔으나 길 앞에는 택시는 고사하고 주차된 차량조차 한 대 없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큰길로 나서봐도 택시는 아니 뵈고 차량들이 길게 정체되어 있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서 현지인들에게 여쭤보니 차라리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라고 일러준다. 하는 수 없이 버스를 잡아탔는데,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다. 내가 가장 늦게 올라섰으니 한참 동안을 옛날 버스 안내양들이 서 있던 자리에서 한 발치도 안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15년 전 디스크 수술을 받았던 허리 통증이 도지면서 정체된 도로에서 한 시간 이상 고문 아닌 고문을 당했다. 마침 어제 보았던 선양고궁이 눈에 띄자 얼른 내려 택시를 갈아타고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몇 번의 길 찾기 실수가 있었으나 이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날 오전 일찍 체크아웃하면서 짐을 호텔에 맡겨 두었으므로 쉴 공간이 사라진 상태여서 밤 11시 36분 퉁화행 심야 침대열차를 타기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이미 저녁 요기를 했음에도 방랑자처럼 선양역 근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편리점(便利店, 한국의 편의점) 바로 옆에 실외 탁자가 눈에 띄어 물어보니 술은 편리점에서 사 오고 안주만 자기 가게에 주문하면 된단다. 꼬치를 안주로 해서 1시간 반을 길거리에서 노닥거리다가 무사히 열차에 올라탔다. 3층짜리 침대칸 중 1,2층에 나누어 눕자마자 나는 곧바로 하늘나라로 갔다. 형들도 다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고 하니 혹여 같은 코스로 여행 가실 분이 있다면 시간과 비용 절약도 할 겸 심야 침대열차를 이용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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