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사건 피해자 이철 선생, 13년간의 투옥기 시민들에게 전해리영희기념사업회, 이철 선생 초청해 민주평화아카데미 진행리영희기념사업회(대표 김동민)가 학술연구분과 주관 올해 첫 민주평화아카데미를 통해 재일동포이자 과거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가슴 아픈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이철 선생의 이야기를 2월 28일 군포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시민들에게 전했다.
이철 선생은 1948년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났지만, 모국의 민족성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으로 들어왔다. 고려대 대학원 유학 중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976년부터 1988년 10월까지 13년간의 억울한 감옥살이 끝에 출소한 뒤 2015년 재심 결과 무죄로 확정 판결받았다. 현재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한국양심수동호회 및 우리민주연합 회장을 맡고 있다.
식전행사로 양심수 이철 씨의 동영상 감상에 이어, 본회 운영위원장인 신완섭 시인이 이철 선생에게 바치는 헌시 ‘앞만 보고 나아가자’를 낭송했다. 시 낭송을 통해 “어제까지 보았던 허상을 내던지고/ 어제까지 꾸었던 망상도 떨쳐내고/ 어제까지 믿었던 우상도 깨부수어/ 지금의 대오를 흐트리지 말자/ 갓 피워낸 불씨가 들불로 타오를 그 날까지/ 절대 돌아보지는 말자/ 앞만 보고 나아가자”며 한마음 한뜻으로 과거의 고난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참석한 이학영 국회부의장은 축사를 통해 자신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가담한 전력이 있어서 이듬해에 벌어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을 똑똑히 기억한다. 국가를 대신해 다시 한번 더 사과드린다. 벌써 50년이 되어버린 군부정권 때의 흑역사일지라도 낱낱이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고 격려했다.
이철 선생은 민주평화아카데미에서 투옥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유신을 내세운 박정희 정권의 1970년대는 계엄 발포가 난무하는 가운데, 국민적 저항을 잠재우기 위한 각종 불법, 특히 여러 번의 간첩 조작사건이 성행했던 시절이었다. 70년대 초에 소규모 간첩 조작사건을 조장하다가 정점을 찍은 사건이 1975년 11월 22일 발표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이었다. 이때 검거된 재일동포 유학생 수만도 1백 명이 훨씬 넘었다. 그는 "12월 11일 새벽 안암동 하숙집으로 낯선 남자 여럿이 들이닥쳐 나를 연행했고 옷을 전부 벗으라고 시킨 뒤 발과 곤봉으로,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나에게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며 "지은 죄가 없는데 자백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전했다.
“암담했던 수감 초기에 용기를 내게 해준 두 가지는 첫째 인왕산에서 들려오는 새벽녘의 목탁 소리였고, 두 번째는 우연히 소지하게 된 마가복음 복음서였다. 당시 사형수에게는 책 반입이 금지되었으므로 복음서를 달달 외우다시피 읽다 보니 성경 속 예수님도 무고하게 죽임을 당했음을 알게 되고, 여기에다 목탁의 울림마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도로 느껴져 억울한 죽음도 다 뜻이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수감 중 여러 민주인사를 만나게 된 것도 행운이라 여긴다. 서대문구치소에서 만난 리영희 선생은 한겨울 손장갑 대신 양말을 손에 끼고 있었는데, 구멍이 나 있는 게 안타까워 ‘선생님, 제가 새 양말을 하나 드릴까요’ 했더니 ‘이 사람아, 구멍이 없으면 책장을 넘기기가 불편하니 괘념치 말게’ 하셨고, 이후 대전교도소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신영복 선생과는 화장실 사용순서를 정하며 신영복은 ‘단똥’, 저는 ‘장똥’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이걸 미화해 ‘長東(장동, 긴 동쪽 나라 출신)’으로 호로 삼아 옥중 전시회는 물론 작년에 출간된 옥중기 책 제목도 『장동일지(長東日誌)』로 펴내게 되었다”
“장동일지를 펴내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저와 연루되어 3년 이상 옥살이를 한 약혼녀 민향숙과 13년만에 결혼해 낳은 1남1녀 늦둥이 자식들에게 엄마·아빠의 굴곡진 삶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 둘째는 감옥에서 만난 비전향 장기수 및 무기징역 민주인사들의 옥중 삶을 포함해 양심수들의 옥중 삶을 대변해 주고 싶었다. 대구 교도소에서 처우개선을 위해 함께 옥중투쟁을 벌였던 동지들, 음으로 양으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신 김수환 추기경과 문익환 목사님, 특히 동지이자 후견인 역할을 다 해준 장모님과 아내, 민가협 동지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들의 도움이 컸다”
신세 진 것들을 갚기 위해 그는 지금 일본 오사카에서 두 단체의 대표를 맡아 아내와 함께 불철주야 활동하고 있다. 이날 강연회에는 김귀근 군포시의회 의장, 신금자 부의장, 김미숙 경기도의원, 이진복 발행인 등 군포시민신문 관계자, 장재근 등 시민단체장 및 4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삼척 가족간첩단 조작사건(1979년)’에서 아버지가 사형당하고 본인도 10년간의 억울한 감옥살이를 감내해야 했던 진형대 씨 부부도 함께해 흑역사의 증언에 힘을 실어주었다.
마지막으로 현 시국과 관련한 한 참석자의 질문에 “지난 12.3 계엄 발표 당시 일본 오사카 자택에서 TV로 상황을 지켜보았는데,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다니!’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참다 못해 12월 7일 첫 탄핵 결의 때는 비행기로 날아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응원봉집회에 함께 참여했다. 그날 비록 가결이 되진 않았지만 1백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 특히 운집한 젊은이들의 밤샘 시위를 현장에서 지켜보며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임을 확신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내 조국이 하루빨리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하여 전 세계에 우뚝 서길 바란다”며 나라와 국민의 안녕을 기원했다.
모정하 리영희기념사업회 학술연구분과장은 "올해 첫 민주평화아카데미를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며 "최근 조기 대선을 기대하며 교육이나 사회 전반에 대해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국가보안법 폐지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철 선생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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