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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은 베리•비례•‘벼ㄹ’로도 불린다. 다른 이름도 있다. “고양이[고네이] 베루 : 북천리(北川里)에서 자지리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바위 절벽. 고양이와 나그네의 전설이 전해옴”(횡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이런 지형을 두고 ‘벼랑형 지명’이라 한다. “벼루【들】 전북-진안군-정천면-구룡리에 있다. 비대 서쪽 벼랑 밑에 있는 들” 땅이름을 한글로 적으면 달리 문제될 것이 없다. 한자로 적으면서 오해가 시작된다. ‘벼ㄹ>별’을 한자 ‘별 星’으로 적는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星谷里(성곡리)는 “벼랑이 있으므로 벼리실/비리실”이라 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 星村(성촌)은 ‘별말’이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옛 하동면) 베리골/별이실은 ‘별리곡(別梨谷)’이라 적으니 난데없는 배 梨까지 등장한다. “고씨굴로 가다가 왼쪽으로 들어가 벼리(벼랑) 밑에 있는 마을. 골짜기가 하도 깊어서 이곳에 들어오면 별만 보인다고 함”(디지털영월문화대전) 『조선지지자료』(1910년)에는 ‘연동리(硯洞里)’라고 적어서 벼랑과는 무관하게 먹을 가는 ‘벼루동네’가 되었다. 비로소 ‘벼루형 지명’으로 진화한다. 이렇게 유식하고 있어 보이는 지명은 서울시에도 있다. 옛 경춘선의 시작점인 성북역 동네는 중랑천 냇가 벼루(벼랑)에 있다 하여 ‘벼룻말’이었다. 한자로는 ‘硯村(연촌. 벼루마을)’ / ‘墨洞(묵동. 먹마을)’이다. 산 이름도 마을 이름과 어우러져 붓바위산(筆巖山필암산/불암산)’이 되었다.
한자 ‘硯路(연로)’를 벼랑에 새겨놓기까지 했으니, 당초의 지명 ‘벼룻길’조차 생경하게 들리거나 틀린 지명 유래라고 우기기 십상이다. 울주군 언양읍 한실마을(‘大谷里대곡리’가 대세다) 반구대 바위그림 가는 벼랑길은 시인묵객이 드나드는 길이라 해서 ‘벼룻길(硯路)’이 되었다 한다. 이곳 풍경을 노래한 한시도 많고 몇 군데 새김 글도 있다. 조선 현종 6년(1655)에 '벼루길 고치는 작업(硯路 改修工事)'을 했다고 반구대 맞은편 바위벽에 내력을 새겨놓았다. 지난 세기 후반, 유길훈 벼루 장인이 이곳에서 언양 녹석(彦陽綠石)을 찾아 공방을 이루었다.(손환일, <한국 벼루의 연석 산지産地와 벼루장>) 이제 이 길은 정말 벼루 사러 오는 길이 되었으니 누구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했다. 어느 지명이든 수천 년을 지나오면서 온갖 인연이 서리게 마련이다. 나중에 생긴 일로 옛 사적을 풀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선견지명이 있다”고 무릎을 탁 치며 땅이름 풀이를 한다. ‘꿈보다 해몽’이요, 우연의 일치다. 예외적인 것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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