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식 이야기] 시래기

지리적표시농산물 제109호-양구 시래기

신완섭 K-GeoFood Academy 소장 | 기사입력 2020/05/06 [23:42]

[우리 음식 이야기] 시래기

지리적표시농산물 제109호-양구 시래기

신완섭 K-GeoFood Academy 소장 | 입력 : 2020/05/06 [23:42]

나이가 드니 배추 머리가 시래기가 되었다.

낙엽이 봄꽃보다 아름답지 않은가.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모습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시래기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 시래기   © 군포시민신문


  시래기의 뜻풀이는 ‘무청이나 배춧잎을 말린 것’을 말한다. 무를 쓰고 남은 ‘쓰레기’가 변형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인도에서 건너와 고조선을 세웠다는 고대 아리안어의 ‘시라게(silage; 살아있는 초목)’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혼동하는 낱말로 우거지가 있는데, 이는 ‘푸성귀를 다듬을 때 골라놓는 질 낮은 겉대’를 의미한다. 우거지의 어원은 ‘웃걷이’다. 위와 걷을 합성 하였듯이 배추 같은 채소의 윗부분을 걷어낸 것을 가리킨다. 

 

  무의 원산지는 코카서스 남부에서 그리스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으로 알려져 있으며 종류가 다양하고 세계 전역에서 재배된다. 시래기에 관한 가장 오랜 국내 문헌은 고려 때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21대 소지왕 때 정월대보름날 왕비와 한 신하가 꾀하던 역모 사실을 알려준 까마귀를 기려 이날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까마귀를 닮은 검정찹쌀밥과 묵은나물을 지어 먹게 했는데, 묵은나물 9가지(시래기, 고사리, 곤드레, 무, 호박잎, 도라지, 취나물, 가지, 삼나물) 속에 시래기가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걸로 봐서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래기를 식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양구군의 대표특산물인 일명 펀치볼시래기가 ‘양구시래기’라는 이름으로 2020년 3월 지리적표시 등록을 마쳤다. 펀치볼은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미군들이 생김새가 화채그릇(punch bowl) 같다고 이름 붙인 해안분지로서 일교차가 심해 시래기를 건조하기에 최적지이다. 고원에서 자란 무를 정성스레 다듬어 오래 푹 삶아 찬물에 우려낸 후 말려 구수한 맛과 부드러운 촉감이 일품이다.

  

  시래기는 추운 곳에서 말릴수록 제맛을 내는 채소이다. 껍질이 부드러워지면서 맛도 한층 좋아진다. 추위와 찬 바람을 잘 견딘 시래기는 영양소도 더 우수해진다. 혹독한 건조과정을 통해 무청의 영양소 함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식이섬유는 건조과정에서 3~4배 높아져 시래기의 35% 이상을 차지한다. 포만감을 주면서 변비나 각종 심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폴리페놀산으로 대표되는 시래기의 항산화 효과는 무 자체보다 뛰어나다. 또한 시래기 100g에는 비타민C가 70㎎(일일권장량의 70%), 칼슘이 190㎎(33.5%), 철분이 14.5㎎(72.5%) 다량 함유되어있어 면역기능과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보기에는 볼품없어도 건조과정에서 영양소 함량이 부쩍 늘어난 엄연한 웰빙식품인 것이다. 시래기의 효능을 살펴보면

 

  1. 변비와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_ 시래기는 100g에 32kcal일 정도로 저열량식이다. 건조과정에서 식이섬유 함량이 3~4배 이상 늘어나 위와 장에 오랜 시간 머물러 포만감을 주고 배변 활동을 도와 체중관리 및 변비에 도움을 준다. 

  2. 동맥경화를 예방한다_ 칼슘 및 식이섬유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동맥경화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장내의 독소 및 노폐물도 배출시켜준다. 또한 철분이 풍부하여 빈혈에도 좋다.

  3. 골다공증을 예방한다_ 시래기에는 비타민C,D, 칼슘, 칼륨, 엽산 함량이 높아 항산화 작용과 면역기능,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적이다. 특히 칼슘의 경우에는 무청 100g당 함량이 무뿌리보다 10배가량 많다. 

  4. 암세포 증식을 억제한다_ 시래기에는 암을 억제하는 성분인 인돌류, 이소티오시아네이트 등이 많이 함유되어있어서 위암, 간암, 폐암, 췌장암, 유방암, 결장암 등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 또한 식이섬유가 풍부해 대장암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좋은 시래기는 싱싱한 무에서 나온 것으로, 건조할 때 직사광선에 노출되지 않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말려 푸른 빛이 감돈다. 따라서 잎과 줄기가 연하고 푸른빛을 띠는 것을 고르는 게 좋다. 구입한 후에는 서늘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하고 물에 불리거나 데쳐서 헹군 뒤 사용하며 남은 것은 물기를 짜서 냉동 보관하면 된다. 내친김에 시래기 삶는 법을 살펴보자. 먼저 묻어 있는 먼지나 불순물은 물에 담가서 씻어준다. 이때 너무 마른 것들은 빼고 시래기가 부숴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다음으로 물로 씻은 시래기를 팔팔 끓는 물에 25분간 불려준다. 미지근한 물에 불려서 다음날 삶는 게 일반적이지만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삶는다. 여기에 시래기 500g 기준 설탕을 1/4컵(50ml) 넣는다. 설탕은 삼투압 작용으로 삶는 시간을 줄여주고 냄새도 잡아준다. 끓어올라 둥둥 떠오르고 부들부들해지면 찬물에 여러 번 씻어서 불순물을 제거한 후 물기를 짜고 먹을 만큼 양을 소분 해서 냉동실에 넣는다.

 

  시래기로 만드는 요리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시래기나물_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다져 넣고 갖은 양념을 하여 기름에 볶은 것으로, 특히 정월 대보름날 많이 먹으며 콩나물을 섞어서 볶기도 한다. ② 시래기죽_시래기를 적당한 길이로 썰어서 된장을 걸러 붓고 쌀을 넣어 쑨 죽이다.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별미이다. ③ 시래기찌개(조림)_시래기에 고등어·쇠고기·된장·두부 등을 넣고 바특하게 끓인 찌개이다. ④ 시래깃국_시래기에 된장을 걸러 붓고 끓인 국으로, 구수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쇠고기를 잘게 썰어 넣거나 조개를 넣고 끓이면 더 맛이 좋다. 

 

  여러 요리 가운데 시래기와 궁합이 잘 맞는 식재료는 단연 된장이다. 시래기는 된장과 잘 어울려 풍미와 군내를 잡아주고 된장에 부족한 비타민 등 영양소를 보충해준다. 시래기고등어조림도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고등어의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시래기에 없는 영양성분을 보충해주어서이다. 시래기가 고등어를 만나면 필수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으며, 고등어의 비린내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들기름과 시래기의 만남도 괜찮다. 들기름의 필수지방산이 시래기에 부족한 영양성분을 보충해줄 뿐만 아니라 시래기를 훨씬 부드럽게 만들어주어서이다. 들깨 가루도 마찬가지다. 식이섬유, 불포화지방산, 비타민E,F가 풍부해 시래기의 성분을 극대화 시켜준다.

 

  경남 통영에 가면 명물 요리로 ‘시락국’을 맛볼 수 있다. 시래깃국의 경상도 사투리다. 경남 진해가 고향인 필자도 겨울철만 되면 시락국이 떠오른다. 어머님이 된장을 풀어 끓여주시던 시락국 한 그릇은 언 몸을 녹여 추위를 가시게 했다. 막내 삼촌은 입맛이 없을 때마다 집에 들러 시락국 타령을 했다. “형수님은 시락국에 미제 된장을 써능교? 와이리 맛있능교!”하고 너스레를 떨던 기억이 난다. 추억을 소환하는 향토 음식 시락국에 대한 향수는 지금도 삶의 활력이 되고 있다.

 

  애석한 점은 2020년 3월 지리적표시 등록의 낭보와 때를 같이하여 코로나19 감염이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한창 팔려나갈 양구 시래기 매출이 뚝 떨어져 농가의 시름이 깊어졌다는 점이다. 다행히 농촌돕기 국민 캠페인이 벌어져 폐기처분의 위기는 모면했다. 가족과 이웃,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하는 시래기 살리기에 여러분도 동참해 주기 바란다.

 

▲ 시래깃국밥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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