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식 이야기] 한라봉제100호 지리적표시 농산물-제주 한라봉2월이 가기 전에 맛봐야 할 제철 음식을 꼽으라면 채소류로는 우엉, 과일로는 한라봉, 어패류로는 꼬막, 생선으로는 아귀와 삼치, 이렇게 5가지를 들 수 있다.
조선족들의 뉴스와 생활 정보를 대변하는 조글로미디어(www.ckywf.com)에 실린 기사이다. 그들의 입맛으로도 겨울과 봄 사이에 맛보게 되는 새콤달콤한 한라봉 맛이 과일로선 으뜸인가 보다. 이처럼 한라봉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만큼 일반 귤에 견주어 당도가 높고 육즙이 풍부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친다. 가히 만다린 계의 왕좌를 꿰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라봉의 탄생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일본 농림수산성 과수시험장 감귤부에서 뽕깐(ぽんかん; 凸柑 ; 인도 원산의 감귤 품종)과 키요미(きよみ 淸見;궁천조생에 트로비타오렌지를 교배하여 육성한 오렌지 품종)를 1972년에 처음으로 교배 육성시킨 교잡종 감귤이어서이다. 1977~1978년에 첫 결실을 보았으나 과실의 과경(fruit stalk, 果梗)부가 삼보감(citrus sulcata takahashi)처럼 나타나고 과피색이 연하며 과실형태가 고르지 못해 기형과실이 나오기 쉽다는 이유로 선발에서 제외되었지만, 1984년부터 양산하기 시작하여 1990년 구마모토현 시험장・농협 등의 관계관 회의에서 품종명을 시라누이(不知火), 상품명을 데코뽄(デコポン)으로 정한 후 이를 공표했다.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 후반 제주의 한 농민이 들여와 알려지게 되었으며 1991년 제주도농업기술원이 공식 연구에 나섰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곳 제주에서도 조금씩 수확되기 시작하여 농가마다 부지화, 데코폰 등 제각각 이름을 달리하여 출하하기 시작하였다. 동일 품종의 감귤이 이처럼 여러 가지 이름으로 출하되자 소비자들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1996년 논의 끝에 봉긋 솟아오른 감귤 꼭지 부분이 제주를 상징하는 한라산과 닮았다는 점을 들어 ‘한라봉’이란 근사한 이름으로 재탄생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재배 20주년을 넘긴 2015년 5월에 대한민국 제100호 지리적표시 농산물 “제주 한라봉”으로 등록되어 제주 돼지고기, 제주 녹차에 이어 3번째의 제주 특산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한라봉은 열매가 늦게 익는 만감(晩柑)류다. 어린나무는 곧게 자라지만 열매가 맺힐 무렵부터는 옆으로 갈라지며 꽃은 다른 감귤류의 꽃보다 큰 대신 꽃가루는 적다. 기형의 꽃도 많이 나고 열매는 거의 씨가 없으며 씨가 있더라도 아주 적다. 열매의 무게는 200~300g인데, 대체로 크기와 모양이 고르지 않다. 처음에는 옅은 녹색이었다가 10월 중순부터 색깔이 변하기 시작하여 12월 초가 되면 주황색이 되고 이듬해 2~3월에 완전히 익는다. 껍질의 두께는 3.5~5mm로서 크기에 비해서는 비교적 얇은 편이다. 감촉은 울퉁불퉁 거칠지만 잘 벗겨지며 육질이 부드러우면서 즙이 많다. 당도가 13브릭스(brix) 이상으로 일반 감귤(8~11브릭스)보다 달콤한 맛이 강하다.
한라봉의 재배면적은 1995년 6.5헥타르(ha)에서 2014년 1,326헥타르로 크게 늘었다. 생산량은 연간 36,000톤을 능가한다. 한라봉은 뿌리가 튼튼한 탱자나무나 수입 대목(臺木; 접목할 때 뿌리 쪽을 남기는 나무)인 스윙글(swingle) 등에 가지를 접붙여 재배한다. 감귤 주산지인 서귀포 남원읍 위미리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주 윤신근씨는 “재배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다”며 “비닐하우스 내 온도를 최소 13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온도가 낮으면 과실 배꼽이 움푹 파이는 기형과실 발생비율이 높아지며 과실이 잘 자라지 않아 가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가온재배를 하면 생육이 빨라져 수세(樹勢)가 좋아지고 큰 과실 생산에 유리하며 산의 함량 감소에도 도움이 되지만 착화량이 적어지거나 당도가 올라가지 않는 경우도 있어 유의해야 한다. 한 마디로 한라봉 농사는 산 함량 관리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하 시기에 맞추어 산도를 내리고 당도를 올리는 것이 기술인 것이다.
한라봉은 껍질을 벗겨 생과일로 먹거나, 껍질을 말려 한라봉차로 우려 마시거나, 껍질과 과육을 채 썰어 설탕에 조린 젤리 형태의 마멀레이드(marmalade)로 만들어 먹는다. 100g당 한라봉의 칼로리는 48kcal이다. 비슷한 단맛의 사과(57kcal), 키위(54kcal), 배(51kcal)에 비해 낮은 편이라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칼로리는 낮아도 한라봉에는 영양분이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C가 일반 감귤보다 1.6배가 많아서 체내면역력을 높이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며, 피로 회복 및 감기 예방에 효과가 있다. 또한 한라봉에 함유된 항산화물질인 카르티노이드(carotenoids) 성분은 노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껍질까지 챙겨 먹는 게 좋다. 한라봉의 겉껍질에는 모노테르펜 탄화수소의 일종인 리모넨(limonene) 성분이, 속껍질에는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헤스페리딘(hesperidin) 성분이 들어있다. 리모넨은 진정・항암작용에 도움을 주고, 헤스페리딘은 동맥경화・뇌졸중・천식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유의할 점은, 껍질째 먹을 때는 소금으로 껍질을 문질러 씻어 농약성분을 제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껍질이 두꺼워 먹기 불편하다면 껍질을 말려 차로 끓여 마셔도 좋겠다.
한라봉의 궁합 식품으로 브로콜리가 언급된다. 브로콜리 외에도 철분이 많은 육류, 현미, 잡곡류, 조개류, 콩, 해조류, 녹황색 채소, 전복, 달걀노른자, 견과류 등을 함께 먹으면 한라봉의 풍부한 비타민C가 철분의 체내흡수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한라봉의 효능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1. 피로회복과 감기 예방. 한라봉에는 비타민C 성분이 1개당 44mg 이상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준다. 2. 성인병 예방. 비타민C와 수분이 혈관의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비타민P의 일종인 헤스페리딘이 신진대사를 도와서 모세혈관을 강화시킨다. 3. 변비 예방. 한라봉에 풍부한 섬유질 펙틴이 장내 유익균을 번식시켜서 장을 튼튼하게 만든다. 4. 피부미용. 한라봉 껍질을 잘 말려 진피차처럼 마시거나 아토피・건성 피부에 달인 물로 씻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5. 다이어트. 100g당 한라봉의 열량(48kcal)은 쌀밥(160kcal)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새콤한 맛을 내는 구연산은 에너지대사를 활발히 하여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 6. 눈 건강. 한라봉에 풍부한 비타민A는 야맹증과 눈의 피로에 도움을 준다.
좋은 한라봉을 고르는 방법으로 껍질에 주름이 많은 것은 신맛이 강할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묵직한 느낌이 들고 위아래로 타원형인 것을 선택하는 게 좋다. 일반 과일들처럼 한라봉도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이 최상품일 것이라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한라봉의 최상품은 200~250g짜리를 최고로 친다. 300g 이상인 것보다 많게는 두 배나 가격이 비싸다. 신맛이 강한 한라봉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팁을 알려드리면 ‘한라봉을 하나씩 비닐봉지에 싸서 상온에 두면 1,2개월 동안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신맛도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몇 해 전 축구선수 구자철과 방송인 노홍철의 별명이 ‘한라봉’이었다 한다. 동료선수 기성용이 자신의 트위터에 한라봉 속에 구자철의 얼굴을 새긴 합성 이미지를 올리며 “자봉아, 구자봉아”라고 놀렸는데 구자철은 한라봉 꼭지를 모자처럼 받쳐 쓴 자신의 해맑은 모습이 싫지 않았던 모양이다. 노홍철 역시 힙합 가수 데프콘으로부터 “노홍철의 코가 아침만 되면 한라봉처럼 커진다”고 놀림을 당했지만, 남성의 코는 정력의 상징 아닌가. 그것도 한라봉처럼 커진다는 데 마다할 별명이 아니었지 싶다.
한라봉은 교접의 산물이다. 바다 건너온 다문화 작물이 한라산의 정기를 머금고 제주에서 다시 태어나 남해안 일대를 찍고 충청도, 경기도로 북상을 거듭하고 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있는 것처럼 휴전선까지 무너뜨려 멀리 백두산에 가서는 ‘백두봉’으로 거듭나기를 꿈꿔 본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한라봉의 변신은 통일의 그 날까지 쭉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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