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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지역 독립·노동운동 역사탐방기
 
신완섭 기자   기사입력  2020/08/21 [08:01]

광복절 75주년인 8월 15일 오전 10시, 비가 뿌리는 가운데 스무여 명이 안양역 광장에 집결했다.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하 민기사)가 주관하는 안양지역 근·현대역사 탐방행사에 동참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안양민주둘레길 현장 체험 (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안양기억찾기 탐사대 최병렬 대장이 안양의 역사변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조선 정조 때 화성 능행을 하기 전까진 안양이란 명칭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했어요. 고구려 때 일벌노현에 속했다가 고려 태조 이후 금주(衿州), 금천(衿川)으로 불리다가 조선 세조 원년인 1456년에는 과천에 병합되고 정조 19년에 와서야 시흥의 일개 리(里)로서 ‘안양행궁(安養行宮)’에 비로소 지명을 붙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1795년부터 남태령을 넘던 ‘과천길’ 대신 시흥행궁, 안양행궁, 사근행궁을 거치는 ‘시흥길’을 택하면서 안양천 위에 만안교(萬安橋) 돌다리도 건립되고 이곳 안양역 앞을 지나 석수동-구 군포사거리-의왕-수원으로 연결되는 신작로가 생겨난 것이지요. 이 길이 이후 1번 국도, 만안로, 시흥대로로 불리게 되었으며 일제 때 경부선이 놓이면서 시장이 형성되고 제지, 방직 등 여러 공장이 들어서면서 일약 신흥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안양1번가와 남부시장을 가로지르는 도보를 시작하며 최 대장은 이 일대 주변의 변화상을 일러준다. “1905년 간이역 개통 이후 안양의 경제를 떠받쳤던 역 뒤편의 한국제지, 태평방직 심지어 구 시장까지 개발의 물살을 타고 몽땅 아파트단지로 변해 버렸어요. 안양역에서 병목안 사이에 있던 금성방직(현 대농단지), 삼덕제지(현 삼덕공원) 등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요” 일행들은 안양역 대각선 맞은편에 자리한 빌딩 수다방에 모여 80년대 여러 노동·시민단체들이 활발히 노동운동을 펼치던 때를 떠올리고, 불법삐라와 불법유인물(?)을 대놓고 만들어 주던 인쇄소 학림사 곁을 지나며 혈기왕성했던 젊은 날을 회상한다. 조용필이 출연했었던 나이트클럽도 사라지고, 단골로 다녔던 명물 식당가도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길 위로 간간이 빗줄기만 날린다. 

 

발길을 잠시 멈춘 곳은 구 서이면사무소(경기문화재 제100호). 1914년 축조 당시에는 호계도서관 부근에 있었으나 1917년 중심지가 안양리로 바뀌면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상서면(현 동안구 일원)과 하서면(현 만안구 일원) 두 개 면을 통합 관리하는 행정관청으로서 지금은 지역사 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석수동 하주명이 노동력 착취에 저항했던 농민운동보고서, 1905년 11월 기차로 귀경하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짱돌을 던져 상처를 입힌 원태우 지사의 기록, 여러 관보와 고사(告辭) 축사 서류, 안양 조선비행기주식회사 설립 등 원본 자료들이 진열되어 일제 때의 실생활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 중 원태우 지사는 당시 23살의 나이에 짱돌 하나로 을사늑약의 원흉을 공격하는 대담성을 보여 언론에는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으로 보도되었지만, 실상은 간담을 서늘케 하여 이후 항일·독립 정신의 귀감이 되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시기 안양지역 항쟁을 설명하는 정성희씨(사진=신완섭)  © 군포시민신문

 

대로를 건너 중앙시장 입구로 들어서자, 행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시민운동가 정성희 씨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 이곳 중앙시장 입구에 모여 항쟁의 불씨를 붙여서다. 시장통 곱창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감회는 더 깊어진다. 동지들과 데모를 끝내고 숨어들어 마시던 쐬주 한 잔의 추억이 새록새록 해서일까. 과거 근로자회관이 있었던 카톨릭회관 자리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일행 모두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날로 돌아가고 있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엄혹했던 그 시절 함성을 지르다가 Y는 L를 꼬셔 장가를 가고, S도 일 대신 연애질하여 S를 색시로 맞았으니 이래저래 결실을 보긴 보았다는 거다. 한바탕 웃음을 흘리며 시장골목을 걷다 보니 어느새 삼덕공원에 도착했다.

 

젊은 시절 삼덕제지에서 일한 적이 있는 김 장로라는 분이 공원 탄생의 비화를 설명하려는 사이 갑자기 비가 굵은 줄기로 퍼붓는다. 그러나 일행은 단 한 명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말씀 요지는 “공장 땅을 시에 기부한 전재준 회장이 삼덕제지의 원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과 노조 활동에 불만을 가진 전 회장이 직원 복리를 챙기기보다 기부 체납으로 자신의 명성을 챙기려는 수작이었다는 점, 그 땅을 희사한 주인공은 결국 피땀 흘려 일한 노동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정성희 씨의 선창으로 우리 모두 “삼덕공원은/ 노동자들이 세운 것!”을 제창했다.

 

마지막 코스로 과거 금성방직, 현 대농단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안양공고 정문을 지나쳤다. 축구 명문이자 수많은 산업 일꾼을 배출한 지역 인재의 산실이다. 현 국민은행이 있는 안길에서 해산식을 가졌다. “안양의 근대 발전은 1930년대가 시발이었다. 포도밭 밤밭이었던 시골 마을이 기차역이 생기고 공장이 들어서면서 산업도시로 급변했다. 거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숱한 공돌이와 삼천 궁녀라 불리던 공순이들의 피땀 어린 희생과 봉사가 있었다. 오늘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조금 전 내리던 비는 잦아들고 우리는 인근 식당으로 들어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듯 막걸리잔을 부딪쳤다.

 

P.S_ 이번 안양 근·현대역사 탐방은 1차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는 8월 29일(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3시간가량 2차 탐방이 진행된다. 2차 탐방의 모임 장소는 관악역 2번 출구 광장이며, 옛 안양상담소-옛 미군부대 자리-옛 한국최초 영화촬영소-정조대왕 능행길-만안교-원태우지사의 이토히로부미 타격 거사지-미군 전술핵무기 저장소-옛 노동현장 활동장소 등을 둘러본다. 참가는 시민운동에 관심 있는 누구나 가능하며, 참가비는 무료이다. 신청 문의는 민기사에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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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21 [08:01]   ⓒ 군포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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