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꾼 백기완 선생이 2월 15일 새벽 투병 끝에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선생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해 오던 중 이날 오전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다.
장례는 사회장이며 발인은 19일 08시, 노제는 19일 08시30분 통일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된다.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이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대부터 통일, 민주화, 노나메기(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 건설 등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지난해 입원 직전 고령에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백 선생은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또한 '새내기', '동아리', '모꼬지', '달동네' 등의 순우리말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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